쪽빛바다의 노래
어릴 때 엄마 손잡고 길을 따라 걸으면 파란 바닷물빛이 늘 우리와 함께 했다. 산모퉁이 어귀에서 ‘까꿍!’하며 숨어버렸다가 다시 산굽이를 돌아나가면 ‘와~’하고 소리치듯 달려 나오는 푸른 바다.
나의 유년기에는 먼 길을 주로 걸어 다녔다. 교통편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에 20리, 30리길을 걸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먼 길을 걸을 때도 늘 쪽빛 바다가 함께했기 때문에 지루한 줄도 몰랐다. 길모퉁이를 돌아나가면 잠시 보이지 않던 바다가 또다시 나타났다. 마치 바다와 술래잡기를 하듯, 놀이처럼 즐기면서 걷고 또 걸었다. 바다는 햇빛을 받아 물비늘처럼 반짝거렸고, 조금 더 자라서야 그 반짝거림이 ‘윤슬’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불리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바람이 차고 햇살이 쨍하게 느껴지는 날의 겨울바다는 그 눈부심이 유난하다. 시금치, 마늘, 보리, 유채 등의 겨울작물은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더욱 싱싱하게 살아난다. 남녘 겨울은 따뜻하다. 그래서인지 어린 시절 혹독한 추위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그 당시 시골에서는 바쁜 농사일을 끝내놓고 농한기인 겨울철에 주로 혼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잔치집에 가기 위해 이삼십리 길을 걸었던 기억도 대부분 겨울이었다.
이번에 문집을 내기 위해 글을 정리하면서 느낀 것은 고향의 바닷물빛이 글의 행간마다 따라다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태어나 사물에 눈뜨면서 말 배우고, 또 정서가 형성되기까지는 내가 자라온 고향의 자연환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그동안 써놓은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오랜 세월 배어든 정서가 의식을 지배하게 되고, 그것이 ‘심층무의식’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을 직접 확인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문득 놀라웠다. 여태까지 살아온 날들이 이 책 속에 다 담겨 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애틋한 유년기의 기억과 부모님의 사랑, 자연에게서 받은 은혜 그리고 글벗들과의 교감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책에 들어 있는 이야기가 문학의 잣대로 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비록 객관적이지 못하고 어설픈 글일지라도 스스로 만족하고 싶다. 덧칠하지 않은 나무의 결처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겠다는 것에 위안 삼으려 한다. 하지만 사실은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2018년 여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