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안과의사입니다.
20대 중반부터 남의 눈을 보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꽤나 시간이 흘렀네요. 저는 숨을 쉬듯 매일 타인의 눈을 살피며 돌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짬이 나면 이렇게 글을 쓰곤 합니다.
우리의 마음, 지성과 영혼이 오롯이 담겨있는 뇌가 바깥세상을 향해 창문을 내었습니다. 그 맑고도 고요한 창문이 바로 눈입니다. 바깥의 세상은 저 머나먼 우주에 이르고 눈 속 저 깊은 곳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에 닿아 있을지도 모르죠. 그 심연을 영혼의 우주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남의 눈을 바라본다는 건 우주를 관찰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천문대에서 망원경으로 광막한 우주를 보는 것과 조그만 제 진료실에서 현미경으로 눈을 보는 일이 비슷하다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이 눈 안에 빛이 담깁니다. 그 빛이 눈으로 들어오기에 모든 사물과 사람들, 흙과 돌, 꽃과 나무, 강과 바다, 하늘과 구름, 해와 달과 별과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눈은 빛을 받아들여 그 빛의 성상을 머릿속에 알려줍니다. 눈과 빛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됩니다. 눈이 없다면 빛은 의미가 없고 그 역도 같습니다. 그 둘은 어찌 보면 하나인지도 모릅니다.
이 눈과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누가 만들었을까요. 성경을 보면 태초에 빛을 가장 먼저 만드셨고 자연을 만든 후에 사람의 몸도 만드셨다 씌어 있습니다. 그런 창조주가 아니고서야 빛과 눈이 있게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안과의사로 살며 글을 쓰는 작가가 될 거란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절대자께서 저를 이끌어 주신 것 같습니다. 처음엔 교우(敎友)들을 위해 눈의 건강에 대한 지식을 쓴 것이 출발이었습니다. 거기서 점점 더 글의 소재와 주제를 넓혀 나갔습니다. 때로는 나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고 쓰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져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가보자, 걸어가 보자, 한 걸음만 더 가보자 스스로를 다독이며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느낀 게 있습니다. 글을 쓰는 건 사랑과 통한다는 겁니다.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선해집니다. 누군가를 생각하게 되고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힘과 위로가 되고 싶습니다. 신과 사람에게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하기에 나도 뭔가 주고 싶고 나누고 싶어집니다. 전에는 무심했던 대상들에게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걸 사랑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요.
약수터에 물이 흘러 고이듯 글 안에는 사랑이 고입니다. 내 안에 사랑이 풍성하다면 그 사랑이 절로 고여 글이 될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내 안에 사랑이 부족해서 글을 쓰는 게 그리 어려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눈과 빛, 글과 사랑의 관계가 닮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눈은 빛으로 인해 그 가치를 발합니다. 빛은 눈이 있기에 우리에게 올 수 있습니다. 글은 사랑으로 인해 그 가치를 발합니다. 사랑은 글을 통해 우리에게 옵니다. 눈이 빛을 안아 더 영롱하게 빛나듯 글이 사랑을 담으면 그 사랑이 더 환하게 빛납니다. 그 빛이 등대처럼 어떤 이에게 희망을 주기도 하고 햇살처럼 온기가 되어 어떤 이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제 글이 이런 빛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이 책이 읽는 이들에게 작으나마 위안과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제겐 큰 보람이 될 것입니다. 책을 만들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내 곁에서 도와주고 힘이 되어준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 준석, 민석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부모님과 형제들, 부평밝은눈안과 동료들과 환자들, 남산교회의 목사님들과 교우들, 의사수필가협회, 리더스에세이, 스페이스에세이 문우들과 사랑하는 친구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2023.7 정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