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대 36가선의 한 사람으로 31세 때 나시쓰보(梨壺)의 5인 중 하나로 선정되어 ≪만엽집(萬葉集)≫의 훈독 작업에 참가했다. 권문세가의 요청에 의해 읊어진 축하 노래(賀歌)나 병풍가(屛風歌) 제작 등에 뛰어난 실력을 보인 당대를 대표하는 전문 가인이었다. 세 번째 칙찬 와카집인 ≪습유와카집(拾遺和歌集)≫ 이후 124수를 칙찬 와카집에 실었다.
기요하라노 모토스케(淸原元輔, 908∼990)는 일본 최초의 수필집인 ≪마쿠라노소시(枕草子)≫의 작가 세이쇼나곤(淸少納言)의 친부로 유명한 가인이다. 병풍가, 우타아와세(歌合) 등에서 오나카토미노 요시노부와 쌍벽을 이루었던 당대의 전문 가인이었다. 마찬가지로 나시쓰보의 5인 중 한 사람으로, ≪습유와카집≫ 이후 105수를 칙찬 와카집에 실었다.
미나모토노 시타고(源順, 911∼983)는 36가선의 한 사람으로 와카는 물론 한시와 한학에도 두각을 나타내었던 당대 최고의 지성이었다. 위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시쓰보의 5인 중 하나였다. 개인 가집으로는 ≪미나모토노 시타고집(源順集)≫이 있으며, 당시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화명류취초(和名類聚抄)≫를 제작했다.
기노 도키부미(紀時文)는 ≪고금와카집≫의 센자 기노 쓰라유키(紀貫之)의 아들로, 생몰년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나시쓰보의 5인 중 한 명으로 네 번째 칙찬 와카집인 ≪후습유와카집(後拾遺和歌集)≫ 이후로 5수의 노래를 실었다.
사카노우에노 모치키(坂上望城, ?∼975?)는 36가선 중 하나였던 사카노우에노 고레노리의 아들로 위 센자들과 함께 나시쓰보의 5인으로 선정되었다. 칙찬 와카집에는 ≪습유와카집≫과 ≪후습유와카집≫에 각 1수씩 노래를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