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관보, 호는 창암, 본관은 풍양이다. 1781년 가주서를 역임했고 1783년 대과에 급제한 후 정조 때 초계문신으로 발탁되었다. 이후 암행어사ㆍ이조좌랑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특히 1799년 승지에 있으면서 정조와 심환지沈煥之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였다. 순조 때는 의주부윤을 역임하고 대사헌에 올랐으며, 이후 기로소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