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조선시대 왕실원당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법보신문 기자, 미디어붓다 기자,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국립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원당, 조선 왕실의 간절한 기도처』가 있고, 공저로 『회암사와 왕실 문화』, 『대법사지』, 『한국의 대종사들』 등이 있다. 연구논문으로 「조선시대 정업원의 위치에 관한 재검토」, 「조선시대 봉은사 수륙재의 역사적 전개」, 「조선초기 능침사의 역사적 유래와 특징」, 「19세기 불교계 동향과 송광사의 위상」 외 다수를 발표했다.
조선 불교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그 생명력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것은 조선불교사를 전공하는 동안 늘 품어온 화두이다.
조선불교사 연구는 사료와 현실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관찬사료에는 사찰의 경제적 기반을 없애고 승려가 되는 길을 원천 봉쇄하는 등 억불정책 일변도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수승한 명산에는 조선시대에 건립된 불전(佛殿)들이 당당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으며, 수려한 골짜기에는 법 높은 수행자들의 선기(禪氣)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는 관찬사료 속에 나오지 않는 무언가가 그 시대에 존재하였음을 의미한다. 불교가 수천여 년간 지속돼온 가장 큰 요인은 중생들이 여전히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작은 등에 담은 마음들이 지금까지도 한국의 사찰을 밝히고 있듯이, 왕실에서 부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사찰들이 왕실원당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시대 내내 유지되었다.
조선의 왕릉수호사찰은 왕릉과 불교가 만나 만들어진 유불융합의 문화적 산물이다. 조선이 건국된 직후부터 설치되기 시작한 왕릉수호사찰은 조선의 국가제사권이 박탈되는 1908년까지 지속되었다. 여기에는 조선 왕실의 불심, 능침사의 경제적 효율성, 억불시대를 극복하고자 했던 승려들의 노력 등이 내재돼 있다.
능침사는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지속된 왕실원당이다. 조선중기 사림의 정계 진출 이후 수륙사나 소격서 등의 불교·도교 시설물이 철폐된 후에도 왕릉을 수호한 사찰들은 재궁, 조포사, 원당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존속되었다.
원당은 필자가 석·박사를 거쳐 지금까지 부여잡고 있는 연구 주제이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석사논문의 주제를 조선후기 왕실원당으로 잡았던 것은 참으로 용감하고도 무식한 일이었다. 논문 심사를 마친 직후 허흥식 교수님께서 이런 주제는 박사논문에서나 하라고 했던 지적이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 말씀이 씨앗이 된 것인지, 박사논문에 이어 지금까지도 원당 연구를 이어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코끼리 다리만 만지고서 코끼리를 그렸다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이 연구는 그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덮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 책은 조선의 왕실원당 중에서 큰 축을 이루는 능침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학술서이다. 2014년 한국학진흥사업단의 창의연구지원사업에 선정되어 3년간 연구를 진행하고 이후 4년간 수정과 보완을 거친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완의 연구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조선시대 불교 사료는 세상에 드러난 것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들이 더 많고, 조선불교사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이니만큼 이 책의 부족함을 거름삼아 더 우수한 연구들이 이어질 것이라 믿으며 아쉬운 마음을 내려놓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