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들이 한껏 푸르고 무성해져 있었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에 나무그늘이 반가웠다. 식물은 늘 그렇듯 생장의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절에 순응하고 제 본분을 다한다. 정작 계절마다 온도와 습기, 미세먼지를 탓하고 힘들어하는 것은 인간이다. 새로운 사실이 아닌데도 새삼스러운 듯한 표현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인간의 몸이, 그만큼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공원을 걷다 보니 새로운 길이 보였다. 늘 가는 길이었는데도 구석진 곳에 소슬한 오솔길이 나 있었다는 것을 여태 몰랐던 것이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을 걸으니 시골 정취가 느껴지면서 한적하고 고요했다.
장소나 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이나 감정 안에도 미처 느끼지 못했거나 알아채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 빈 곳, 낯설고 오묘하게 남겨진 그 자리를 탐색하려고 인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닐까.(중략)
소설 쓰기는 높은 산처럼 아득하고 멀지만 서두르지 않고 찬찬히 걸어가겠다. 가파른 벼랑을 맞닥뜨려도 힘을 내어 걷는다면 언젠가 웅숭깊은 사유의 글을 길어 올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빛에 닿지 못해 어둠 속에 버려지거나 경계에서 밀려난 이들의 편에 서서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목소리를 담겠다. 책 백 권을 내려면 나무 두 그루가 소요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책이 나오기 위해 쓸쓸히 베인 나무들에게 진정으로 미안하다. 책에 담긴 나무의 정령과 필자의 열정이 독자들에게 따스한 온기로 가 닿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