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 출생
·전북이리여자고등학교
·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
·초당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석사
·《시와사람》 신인상 수상
·시집 『상상임신 하는 여자』 외
·광주PEN문학·광주문협 회원,
·다박솔·기픈시·별숲 동인
·비움박물관시낭송협회 예술감독
· 사회복지관 강사
·문화관광부 파견 어린이교육기관 외부강사
·광주광역시 서구청 자서전강좌 집필 작가
·시낭송 CD 제1집 기획·발표
·전국애송시낭송대회 금상 수상
몇 년 전, 헌혈차로부터 딱히 납득이 될 만한 이유도 없이 거부를 당했다. 단지 피곤해보이고 나이가 좀 많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였는데, 마치 당신은 이제 ‘쓸모없는 존재’라고 단칼에 나의 ‘有能性’을 베어내는 것 같아 어이없었다. 누군가의 절실한 순간을 위하여, 비록 내가 ‘피 한 방울’조차 나눌 수 없다는 괴리감은 상대적 박탈감보다 공허했다.
그럼에도, ‘물’이 아닌 피를 대체할만한 확실한 무엇이 있어야겠기에 가깝고도 먼 곳의 타인들과 쓸쓸함을 털어내는 말 걸기를 시작했다.
다행히, 나는 그 ‘피’보다 공유가치가 큰 ‘문학’을 찾았고 시인의 이름으로, 마음에 ‘피’가 부족하고 ‘상처’를 응시하지 못하는 세상의 외눈박이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서툰 옹알이로 세상의 변방에서 부터 말 걸기가 시작되었다.
아, 이윽고 23살에 죽은 막내외삼촌이 생각난다.
나를 처음 성 밖으로 사다리를 놓아준, 말하자면 시대가 그를 용납하지 않는 선구자였으므로, 대신 그가 쓰다 멈춘 이름을 호명하는 일은 살아남은 자의 의무였다.
때때로 권리보다, 양심보다, 도리보다, 더 두려운 책임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까닭 없이 미래를 부정하던 사춘기 무렵 반드시 국문과를 가서 시인이 되라 시던 하정옥 선생님께 맨 먼저 소식을 드려야겠다.
또 문학의 DNA와 삶에 대한 유산을 주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숨 막히는 사랑도 더할 나위없는 축복이었고 남편의 묵묵하면서도 명징한 애정과 엄마의 ‘어록(語錄)’을 친구들에게 자랑스러워하는 두 아들과 며느리에게도,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많은 사랑을 보태겠다는 약속을 손가락 걸겠다. 또 언니 같은 여동생에게도 그간의 세월이 염치없고 미안하다. 가족의 의미는 피가 아닌 ‘진정성’이라는 끈으로, 공동체 운명을 똘똘 묶는 것이리라.
오늘도 시인이기보다 종합예술가인 오소후 교수님과 텔레파시로 교신하는 영광을 누렸고, 탄탄하게 인문학적인 토양을 가꾸어 주신 강만 회장님과 김정희 국장님, 또 시인의 자격을 처음 부여해 주신 《아시아서석문학》 김석문 발행인님과 언어에 대한 욕망을 전이시키는 이향아 시인님께도 감사를 드리며 특별하게도, 시를 쓰는 행위야 말로 생명을 출산하는 고통임과 눈물의 환희가 피워내는 가장 고귀한 카타르시스임을 깨닫게 해준 김 종 교수님께 엎드려 존경을 바칩니다.
부끄러운 저에게 ‘신인상’이란 날개옷을 입혀서 아름다운 시집이 탄생되도록 산파가 되어주신 《시와사람》의 강경호 발행인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아 ! 나도 드디어 아이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