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옌타이대(烟台大学)에서 한국어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공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쳤다. 현재 중국 웨이팡대학교 한국어학과 학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저로 《한중 근대소설 비교연구》(한국문화사 2016), 《재만(在滿) 조선인 소설의 세계인식 연구》(한국문화사 2021) 등이 있다.
19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시작된 조선인의 만주 이주는 1945년 일제의 패망 직전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이주 역사는 크게 네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1910년까지 청조(淸朝)의 조선인 만주 이주 진흥과 조선인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시작된 조선인 이주 ‘발생기’, 1911년부터 1931년까지 중국 정부의 조선인 이주 제한-견제와 일제의 착취를 피해 어쩔 수 없이 이주를 감행해야 했던 조선인 이주 ‘제한적 지속기’,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의 만주국 건설과 만주국 경영에 필요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일제가 정책적으로 추진한 ‘강제적 확장기’,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조선으로의 귀향을 포기하고 만주에 남아 중국 국적으로 귀화하여 조선족으로 중국 소수민족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시기가 그것이다. 이주 조선인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분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을 ‘재중 한국인’ 또는 ‘재중 조선인’이라고 칭하고, 그 이후를 ‘중국 조선족’이라고 부른다.
재중 한국인 혹은 중국 조선족은 중국 내에 디아스포라를 형성하고 중국인 문학과는 구별되는 ‘재중 한국인 문학’ 또는 ‘중국 조선족 문학’을 한국어로 면면히 창작해왔다. 재중 한국인 문학이 대체로 이주 조선인의 정착 의지를 다룬다면, 중국 조선족 문학은 중국으로 귀화한 이후 소수민족으로서의 조선족의 삶을 다루고 있다. 최근 연구에서 ‘디아스포라’는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유로 본국을 떠나 타지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원래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면서 사는 민족집단 또는 그 거주지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며, 디아스포라 집단은 이주 후에도 문화적 결속력과 모국어의 보존 등을 통해 이주국과는 차별화되는 집단적 특성을 띤다. 이러한 특정 집단으로서의 디아스포라는 국제화, 세계화 또는 탈민족국가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이주국이든 본국이든 절대로 외면할 수 없는 초국적(超國的) 문화 자산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그런데 지금껏 ‘디아스포라 문학’이라 할 수 있는 재중 한국인 문학은 이러한 초국적 문화 자산으로서의 가치보다는 주로 식민지배에 저항한 ‘민족문학’, 이른바 ‘항일(抗日) 투쟁문학’ ‘반일(反日) 민족문학’이라는 관점에서 그 가치를 평가하고 한국근대문학사에서 온당한 위상과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역설되어왔다. 물론 재중 한국인 문학이 가지는 이러한 민족문학적 가치는 절대로 가벼운 것이 아니지만, 재중 한국인 문학은 일반문학, 세계문학의 일부로서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그 문학적 가치가 규명되어야 마땅하다. 최근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근대시기 재중 한국인 소설을 서사구조, 주제의식, 창작기교, 작가론, 문학사회학 등 각양의 방법으로 그 문학적 가치를 새롭게 탐구하고, 비교문학적 방법론으로 중국 문학과 비교하면서 그 문학적 실체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논의가 이루어져 왔고, 상당한 성과도 거두게 되었다. 재중 한국인 소설을 동시대의 중국인 소설과 비교문학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단순히 양자 사이의 영향 관계를 파악하는 차원을 넘어 재중 한국인 소설이 가지는 문학적 본질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필자는 최근 다문화와 탈국가주의가 세계사적 조류를 형성하면서도 동시에 패권적 국가주의 또한 강화되고 있는 모순된 현실을 목도, 근대 시기 재만 한국인 소설이 ‘디아스포라 문학’으로서의 세계보편문학적 가치에 주목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낯선 이국땅 만주로 이주했던 조선인은 현지 원주민인 중국인 거주지에 들어가 만주라는 공간에서 ‘다문화 사회’를 형성한다. 그러나 두 민족은 서로 다른 문화로 인해 빈번하게 충돌하였고, 만주의 중국인은 이주 조선인을 배척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넓은 미개척지-원시적 순수성(Authenticity)을 가진 만주라는 공간은 두 민족 간의 충돌보다는 두 민족의 상보적 생존을 위한 협력의 공간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보인다. 일제의 식민 침략으로 똑같은 피식민자의 처지에 놓인 두 민족은 극적으로 문화적 혼성(混成)을 넘어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길을 찾게 되는데, 재만 한국인 소설은 리얼리즘적 서사를 통해 이러한 현실을 내보이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이 책에서 일제강점기 재만 조선인 소설이 리얼리즘적 서사에서 보여준 세계보편문학적인 가치를 탈식민주의적 문화 다원주의와 문화 혼종성(混種性)이라는 시각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21세기에 이르러 과학기술의 발전과 자본의 세계화는 국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민족의 울타리를 해체하고 있으며, 전 세계는 이제 다양한 문화들의 융합을 경험하고 있다. 문화란 기본적으로 서로 만나고 충돌하고 혼합되는 가운데 역동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특성이 있다. 개별 문화들은 하나하나가 독자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다양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이러한 다양성은 제3의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내는 힘의 원천이 된다. 오늘날 어떠한 문화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우리는 일상생활의 도처에서 다양한 형태로 서로 다른 문화들의 혼성(混成, hybridity)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의 혼성을 부정적으로 보고 다른 문화를 배제하고 하나의 문화를 일방적으로 강요하게 되는 경우 국가적 폭력이 발생하게 되는데, 19세기 말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서양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한 일제가 한국과 중국을 폭력적 방식으로 ‘계몽’하고자 했던 역사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최근 전 세계에서 국가 간 또는 지역 간 이주가 빈번해지고 다문화 현상과 문화 충돌 문제가 보편적 관심사가 되면서 이러한 문화 충돌을 어떻게 공존과 융합으로 건설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지가 주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일제강점기 재중 한국인 소설을 재조명해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들 소설은 단순히 일제에 저항한 민족문학이나 당대 창작된 중국인의 소설과 대비되는 가치만을 지닌 것이 아니라, 다문화의 공존과 융합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세계보편문학적 가치도 지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연구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1920년대부터 1945년까지 일제강점기 재중 한국인 소설 가운데 192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최서해와 주요섭을, 193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여류작가 강경애를, 그리고 194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안수길을 선정하여 그들의 대표 작품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최서해의 ?홍염(紅焰)? ?기아와 살육(殺戮)? ?토혈(吐血)? ?고국(故國)?, 주요섭의 ?첫사랑 값? ?인력거꾼?, 강경애의 ?소금? ?채전(菜田)?, 안수길의 ?벼? ?목축기(牧畜記)? ?원각촌(圓覺村)? ??북향보(北鄕譜)??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 먼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개별 작품에 나타난 인물들의 이미지와 주제의식을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두 민족 간의 갈등과 대립, 공존에 관한 소설 속 서사가 시대별로 지니는 경향성을 파악하여 어떻게 이질적인 두 문화가 충돌과 대립을 넘어 공존과 융합의 길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재중 한국인 문학, 특히 재만 조선인 문학은 기존의 논의에서 밝힌 바대로 반식민주의적 저항문학이자 민족문학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 문학은 문화다원주의를 옹호하고 혼성적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세계시민주의적 이념을 원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재만 조선인 소설의 서사는 인류 보편적 가치가 다문화 사회에서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지 사실적으로 담아내 보이는 것이다. 일제의 강압적 통치 아래 이민자였던 조선인과 피식민 주민으로 전락한 중국인들이 만주라는 공간에서 이민족 간 갈등과 충돌, 대립을 넘어선 상호 공존과 융합 추구의 정신 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러한 시각은 일제강점기 재만 조선인 소설이 보여주었던 몇몇 친일문학적인 일면들로 인해 의혹과 비판을 불러올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러나 문학의 겉과 속을 균형 있게 바라보고 그 본질적 진실을 궁구하는 것이 문학연구의 본령이라고 한다면, 재만 조선인 문학의 속살에서 문학적 진실을 발굴하고 재발견하는 일은 비록 시론(試論)적인 작업이라 할지라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할 것이다. 일제 치하라는 냉엄한 현실 속에서 만주에서 살아남아 작품 활동을 이어가야 했던 이주 조선인 작가들의 현실적 처지를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이주 조선인이든 중국 원주민이든 일제의 폭압적 통제와 착취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의 문제는 당시 그 어떤 이념보다 선행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생존’조차 이주 조선인 자신만의 땀과 노력에 기대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비록 재만 조선인 작가들의 사실주의적 서사 속에서 일제 식민주의 담론과의 상동성이 일부분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비판하기에 앞서 중국 원주민과의 연대를 통해 다원적 공동체를 건설하여 만주에서 이주 조선인들이 민족적 정체성을 잃지 않고 정당하게 생존해 나갈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려 했다는 것에 더욱 방점을 두어 평가해야 마땅한 것이다.
‘탈아입구(脫亞入歐)’ 사상을 내세운 일제는 유럽이 아시아를 대하던 방식 그대로 식민통치를 통해 일본 민족 우월주의와 이른바 ‘개화된’ 서구 문화를 강요하였고, 이는 조선 사회에 문화 충돌-세계관과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으며, 한국인의 자아 인식과 정체성에도 혼란을 일으켰다. 한국인 대부분은 생존을 위하여 문화 충돌 속에서 한편으로 일제의 부당한 강요를 마지못해 수용하고, 한편으로 문화적 혼성을 통해 일제의 학문과 기술, 제도 등을 배우고 습득하면서 일상의 생존을 이어갔다. 이러한 한국인의 일본 문화에 대한 ‘흉내 내기’가 식민주의 담론에 대한 전면적인 해체에 도달하기까지 피지배 국민인 한국인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만주로 이주해간 이주 조선인들은 조선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보다 더욱 극적으로 문화 충돌에 의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그러나 재만 조선인 소설 속 이주 조선인은 만주에서 중국 원주민과 서로 함께 혼성적 공동체를 이루어 중국인과 한국인, 두 민족이 서로 연대하여야 생존할 수 있다는 공존의 정체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중국인과 만주라는 자연공간을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일부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만주의 중국인 원주민들도 대부분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서 중국 정부의 만주 이주 장려정책에 따라 산동(山東) 등지에서 정책적으로 이주를 온 사람들이고, 원래부터 만주에서 살았던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들에게도 만주는 이주 조선인과 마찬가지로 제2의 고향으로 새로이 건설되어야 할 순수함을 가진 미개척지였다. 그래서 만주의 중국인들과 함께 만주의 황무지를 농토로 개간하고 새로운 마을을 건설하고자 한 이주 조선인은 그들의 동지가 될 수 있었으며, 게다가 북방 지역 중국인들이 가지지 못했던 벼농사 기술을 가진 이주 조선인들은 황무지 개간의 가능성과 효율을 더욱 증대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재만 조선인 소설 속 이주 조선인들은 만주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벼를 자식처럼 사랑하고 아끼며 자신의 손으로 농사짓고 떳떳이 먹고 사는’ 농민도(農民道)와 도혼(稻魂)을 지니고 살아가야 한다고 스스로 답하였다. 그리하여 만주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아름다운 제2의 고향을 만주에 건설’한다는 북향정신(北鄕精神)의 실천 강령과 실천 의지를 천명하였다.
요컨대, 재만 조선인 소설 속 이주 조선인들이 중국 원주민과의 연대를 통해 다원적 공동체를 건설하고 혼성적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만주에서 조선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생존해 나갈 수 있는 대안적 이념으로서 ‘농민도’와 ‘북향정신’을 제안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재만 조선인 소설의 서사는 이 시기 재만 조선인들이 이문화(異文化) 사이의 문화 충돌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문화 다원주의적 공동체 건설을 긍정하고 혼성적 정체성을 인식하며 이민족 집단이 조화롭게 공존하면서도 ‘농민도’와 ‘북향정신’이라는 구체적인 이념과 실천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다문화와 국가 간 이주가 보편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디아스포라’ 집단과 원주민 집단 간의 충돌과 대립이 어떻게 조화롭게 해소되고 이질적인 집단들이 혼성적으로 공존할 수 있을지에 관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필자는 지난 10여 년간 석사와 박사 논문을 포함하여 재만 조선인 문학을 주제로 장기간 연구를 진행해왔다. 필자 역시 재만 조선인 문학을 ‘항일’ ‘반(反)식민’ 민족문학으로서 문학사에서 온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시각에서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후 일제강점기 만주지역 중국인 소설과의 비교연구를 통해 둘 사이의 영향 관계보다는 둘이 공유하고 있는 정체성과 이념적 합의가 두 문학의 본질, 문학적 진실에 가깝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고, 일제강점기 재만 조선인 소설을 문화 다원주의와 문화 혼성의 시각에서 그 세계보편문학적 가치를 실험적으로 탐색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재만 조선인 소설을 이와 같은 시각에서 본격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연구로서, 논지 전개가 직선적이고 논거 분석이 풍부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재만 조선인 소설을 문화적 다원주의와 문화 혼성성이라는 시각으로 그 세계보편문학적 가치를 새롭게 발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최근 일제강점기 재만 조선인 소설을 디아스포라 문학으로 분석한 연구들의 성과물을 본서의 논지로 접근하여 이해해보면 보다 포괄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시론(試論)적 논의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끝으로, 이 책을 출판을 맡아주신 한국문화사 김진수 사장님과 편집부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독자의 질정(叱正)을 기대한다.
2020년 10월
중국 산동(山東) 유현(?縣) 한림신성(翰林新城)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