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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현철 (玄哲)

본명:현희운

출생:1891년

사망:1965년

최근작
2015년 7월 <현철 평론선집>

현철(玄哲)

근대극 운동의 선구자이자 문예비평가로 많은 글을 남겼다. 현철의 본명은 현희운이고 호는 현당(玄堂), 효종(曉鍾), 효종생(曉鍾生), 세류옹(世瘤翁), 해암(海巖) 등이다. 소설가 현진건의 당숙이기도 했던 현철은 1911년 보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1913년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 재학 중 일본 신극의 선구자 시마무라 호게쓰(島村抱月)가 경영하는 게이주쓰좌(藝術座) 부속 연극학교로 옮겨 연극 공부를 시작했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문예 활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배경이 된다. 이 시절에 현철이 영향을 받았던 문예이론은 이후 발표하는 창작론과 문학 일반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1917년 연극학교를 마치고 귀국했으나, 다시 상하이(上海)로 가서 연극 공부를 계속했다. 1919년 2월 귀국하여 서울 서대문 근처에 예술학원(藝術學院)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근대극 운동을 전개했다. 같은 해 6월 ≪개벽≫지를 창간하고 초대 학예부장으로 취임하여 1923년까지 일하면서 다양한 문예평론과 희곡 작품을 지면에 발표했다. 1923년 10월 동국문화협회(東國文化協會)를 발족하고 이듬해 12월 조선배우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양성했다. 1926년 2월 조선배우학교 1기생이 졸업했으며 같은 해 9월 입센의 <인형의 집>으로 시연회를 열었으나 1년 만에 문을 닫고 말았다. 1934년 5월, 박승희(朴勝喜)와 함께 토월회(土月會) 후신인 태양극장을 재건하려 했으나 포기하고, 창극 진흥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해방 후 동국문화협회를 통하여 ≪한국 급 한국인≫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대표 평문으로는 <소설 개요>, <소설 연구법>, <소위 신시형과 몽롱체>, <문학에 표현되는 감정>, <희곡 개요>, <현당극담>, <문화사업의 급선무로 민중극을 제창하노라>, <비평을 알고 비평을 하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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