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 사이의 미적 거리’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진가다.
그 거리를 유지하면서, 남편과 둘이서 사진찍기 놀이에 흠뻑 빠졌다.
외벌이로 아이 셋을 키우는 고단한 삶이었지만, 그 과정 과정을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 속에는 그녀가 누린 삶의 아름다움이 알알이 박혀 있다.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강재훈 사진학교(41기)에서 사진 공부를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쓴 남편 이야기 <서울 염소>가 있다.
내 남편 별명은 ‘염소님’이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지만, 자유를 갈망하는 남편.
그 방황을 담은 전시가 ‘서울 염소’다. 전시 후 그는 쭉 그렇게 불렸다.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었고, 어느새 우리 나이 앞자리도 바뀌었다.
겉보기에 그는 여전히 가족이라는 동그란 원에 갇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수없이 사진을 찍으며 가족이라는 저 동그라미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염소가 끈을 풀고 원 밖으로 탈출하는 것이 가능할까? 가족은 그를 옥죄는 목줄일까?
그 힘겨운 시간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는 새로운 공간 여행을 시작했다.
태풍 볼라벤이 한반도 남쪽 땅끝 장흥과 고흥 사이를 휩쓸고 지나가던 해였다.
남편은 구글 위성 지도를 보면서 한 점을 찍었다.
가까이 자기가 좋아하는 바다가 있고, 뒤에는 내가 의지할 산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거기에 작은 쉼터를 마련했다.
처음에는 귀농이니, 자급자족이니 하는 생각으로 오고갔지만, 그곳은 그의 ‘해방구’였다.
진공의 상태처럼 모든 걸 다 잊어버릴 수 있는 곳. 아무런 계획표도 없는 시간들….
갔다오면 또다시 화면이 바뀌어 서울살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그래도 그는 조금씩 생기를 찾아갔다.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안 짓는 것도 아닌 봉산리 김씨가 되어.
그를 찍었다. 나의 사진은 남편과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을 함께한다는 것 외에는 아무 목적도 없다.
같은 시공간을 오가며 서로를 응시한 결과물이다.
오랜 시간 남편을 찍던 어느 날, 동그라미를 뚫고 나오는 듯한 형상의 그를 찍게 되었다.
그 사진을 보면서 깨달았다. 가족이라는 원은 2차원 평면이 아니라는 것을!
그의 테두리였던 가족은 서로에게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더 단단히 붙잡아 주는 땅 같은 존재들이다.
함께한 세월만큼이나 서로에게 깊게 내린 뿌리가 얽히고설켜, 가족이라는 3차원의 입체, 둥근 공을 만들어 왔다.
그 뿌리가 깊고 커질수록, 가족이라는 둥근 공도 더 커져 간다.
내 남편 ‘염소님. 눈에 보이지 않는 원 아래쪽에서는 세 아이들과 내가 그를 밀어 올려주며 응원하고 있다.
그 힘을 받아 그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고개를 들고 가슴을 젖혀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