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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 타망(Marc-Antoine, sieur de Saint-Amant)1594년 9월 30일 루앙에서 가까운 끄빌리(Quevilly)에서 태어났으며, 1661년 12월 29일 파리의 한 호텔에서 생을 마감했다. 17세기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었으며, 고전주의 학파의 전통과 규칙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영감과 환상에 따라 자기 시대를 가능한 가장 충실하게 반영한 리베르탱 시인이었다. 그는 프로테스탄트 출신으로 22년 동안 영국 함대를 지휘했던 아버지를 따라 유럽의 여러 나라, 카나리아와 아프리카 해안, 카리브 해와 서인도 제도 등을 여행했고,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구사할 줄 알았으며, 음악, 회화, 과학에 조예가 깊었다. 레 공작(duc de Retz), 크레키 원수(Marechal de Crequy), 아르쿠르 백작(comte d’Harcourt), 폴란드 왕비가 된 마리 루이즈 드 공자그(Marie-Louise de Gonzague) 등 많은 귀족들의 후원을 받으면서 그들의 외교 활동과 원정길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의 시의 테마와 주제는 폐허에서 바다의 풍경까지, 먹고 마시고 잠자는 일상의 즐거움에서 종교적 명상과 당시의 정치 사회적 사건에 이르기까지 바로크의 다양성을 다루었으며, 독창적인 상상력과 영감이 넘치는 작품들을 창작했다. 생 타망은 롱도와 트리올레, 엘레지, 서간시, 풍자시, 오드와 성경의 서사시 『구원받은 모세』(1653)를 비롯해서 에피그람에서 소네트에 이르기까지 가장 다양한 시 형식과 장르를 넘나들었다. 특히 그 당시 그의 작품의 성공과 인기는 상당한 편집 수에도 입증이 되고 있는데, 1629년 작품집의 제1권과 1631년의 1권 연속권 등이 각각 5판이 나왔으며, 1643년 제2권도 2판, 1658년 마지막 작품집이 3판이 각각 출판되었다. 이러한 작품집 이외에도 여러 작품들이 따로 수많은 부수가 재판, 출판되었다. 『구원받은 모세』의 경우 17세기에 일곱 번의 재판과 약 6000~8000부가 출판되었고, 여러 복제품도 나왔다. 특히 『우스꽝스러운 로마』는 재판된 수로 봐서도 대단히 성공을 거둔 것으로 입증이 되고 있는데, 총 열네 번의 재인쇄와 재판이 있었다. 생 타망은 17세기 동시대 많은 작가들에 의해 거의 일생동안 “유명한 생 타망” (le fameux Saint-Amant)으로 대단히 평가받았지만, 그의 사후 고전주의 이론가인 부알로(Boileau)에 의해서 형편없고 우스꽝스러운 작가로 비판받아 이후 거의 200년 동안 프랑스 문학사에서 사라졌다가 테오필 고티에에 의해 복권되어, 오늘날 프랑스 바로크 문학을 가장 잘 구현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 ![]()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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