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캐나다 퀸즈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와 인지과학 협동과정 교수, 한국인지과학회 회장을 거쳐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인지심리학》 《인지과학: 과거-현재-미래》 《인간과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것들》(공저) 등이 있다.
21세기 첫 10년이 지나고 두 번째 10년이 시작되는 요즈음 국내 학계, 대학, 과학기술관련 정부기관, 기업, 일반인들 모두가 학문간 융합과 그에 바탕을 둔 융합적 테크놀로지의 창출, 인력 육성에 상당한 관심을 표하고 있다. 21세기의 국내 지성인들의 화두가 '융합'과 '인지과학'이 되고 있음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1958년 미국 동부 대학들에서, 여러 학문 분야의 첨단에 있던 학자들의 지적 탐구에 대한 노력의 결과로 자연적으로 또는 필연적으로 형성되어 기존의 뉴턴식 과학 패러다임을 대체할 과학적 접근으로서 '정보처리적' 접근의 '인지주의' 과학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이 접근이 종합과학적 학문으로 구현되어 새롭게 형성된 것이 바로 다학문적 과학인 '인지과학'이다. 이러한 인지주의가 일으킨 개념적 변혁에 의해 인공지능이란 분야도, 인류의 디지털 문화 시대도 열리게 된 것이다.
인지과학은 1958년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출발했으며, 인공지능 분야의 발전과 1967년 나이서 교수의 『인지심리학』 출간을 계기로 하여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 무렵에는 인지주의가 미국의 심리학계를 비롯한 관련 학계에 영향을 주며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이후 1979년 세계 최초로 미국의 인지과학회가 창립되었고, 1986년에는 세계 최초의 인지과학과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UC 샌디애고)에서 창설되기에 이른다.
1960년대 말에 미국에 유학해 새로이 체득한 인지주의, 인지과학을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일본에 소개한 사에키 유타카 교수를 비롯한 일본인 학자들은 인지과학을 일본에 널리 펴는 작업으로 1983년에 일본인지과학회를 창립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부터 동경대학교 출판부에서 '인지과학 총서' 시리즈를 만들어 이후 1992년까지 여러 권이 출간됐다. 그런데 각론 위주의 인지과학 시리즈 출간 중에서 이를 종합하고 인지과학 전체를 아우르며, 어떻게 하면 인지과학 연구를 잘 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두어 출간한 책이 바로 이 책 『인지과학 혁명』이다.
이 책의 첫 장인 '들어가며: 일본에 인지혁명은 일어났는가'에서는 저자가 인지과학에 어떻게 빠지게 되었으며 미국과 일본에서 인지과학이 어떻게 형성되고 전파되었는가, 인지과학 그리고 인지과학 학도의 주요 문제들이 무엇인가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인지과학의 세부 주제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제시하며 각론을 전개하는 데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1장, '재미있는 연구를 위하여'와, 부록인 '인지과학 혁명: 해제'에서 보여지듯이, 한 과학도가 지적으로 '재미있고' '좋은' 연구를 지속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에 대한 길잡이를 제시한다. 이 두 장은 인지과학을 전공하는 학도는 물론, 과학적, 학문적 연구를 하려는 지적 탐구자 일반이 지녀야 할 자세, 학문에 대한 접근의 길을 설득력 있게 알려준다. 물론 이 책의 다른 장들, 즉 2장 '인간의 합리성', 3장 '인간의 상황성', 4장 '정보처리 시스템으로서의 인간', 5장 '경험세계의 인지과학'에서는 인지과학이 이루어낸 중요한 연구 결과와, 새로운 관점들에 대한 각론적 설명을 이해하기 쉽게 소개한다. 인지과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과학적, 학문적 연구 분야에 몸담으려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 책을, 적어도 이 책의 1장과 부록을 일독할 것을 권하고 싶다.
한국 상황을 되돌아보면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인지적 접근이 한국에서 공식적 학술 모임에서 소개되며 패러다임의 전환을 알린 시초는, 1983년 초 한국심리학회의 동계연수회에서 '정보처리적 인지주의'의 패러다임이 중심주제로 소개된 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 그 후 1986년에서 1987년에 걸쳐 대우재단 지원 하에 심리학, 철학, 언어학, 컴퓨터과학, 신경과학, 사회학 등의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여 '인지과학' 공동연구 세미나를 전개했고 1987년에 이 공동연구의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한국인지과학회가 탄생했다. 이에서 약 10년이 지난 후인 1995년부터 연세대를 비롯한 몇 개의 국내 대학에 인지과학 협동과정이 대학원 과정으로 개설됐다.
국내에서는 한국인지과학 학회가 출범한 지 4반세기가 지난 21세기 초엽인 지금에서야 인지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특히 학문간 융합과 미래 테크놀로지(특히 인간과 디지털 기기의 연결, 상호작용, 디자인 관련 기술) 발전에 주는 함의의 중요성이 식자들 간에 알려지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과학기술 관련 기관(정부기관, 대학 등)이나, 기업, 매스컴의 상당수의 사람들에게는 '인지과학'이 무엇인지, 왜 중요한지, 미래 테크놀로지 개발과 인력 육성에 인지과학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시민 개개인의 일상생활에 왜 중요한지 등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에서 몇 권의 인지과학 관련 책들이 이미 출간되었기는 하지만, 이 책처럼 과학적 연구란 무엇이며, 재미있는 인지과학 연구를 하기 위해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인지과학의 주요 관점은 무엇인지를 적은 분량으로 함축적이고 친근하게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이웃 나라인 일본이 융합적 학문인 인지과학을 어떻게 접근해 왔는가를 파악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일본의 인지과학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데에 이 책은 일조를 하리라 본다. 인지과학이 무엇인가, 일본의 인지과학은 어떠한가, 재미있는 과학적 연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