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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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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애일라>

김수호

2002년 단편「호루라기 불다」로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부분, 2012년 시「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외 4편으로 계간『시작』시 부분을 수상했다. 시와 소설뿐만 아니라 월간『해피데이스』에‘읽는 그림 보는 동화’라는 어른을 위한 동화를 연재했다. 이 중「누나와 앵무새」,「엄마의 솜이불」,「엄마와 좀도둑」등의 동화들이 KBS의「TV동화 행복한 세상」을 통해 방영·출판되었다. 특히「누나와 앵무새」는 대한교과서에서 펴낸『고등학교 전통윤리』에 수록되기도 했다. 또한 EBS와 ilovegosi.net에서 고입과 대입 검정고시 특강 강의도 했다. 현재 소설 집필과 국어 교육 연구 및 강의를 하고 있다.
noan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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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애일라> - 2014년 4월  더보기

이 소설을 시작하면서 여러 사념에 시달렸다. 문장을 써놓고 돌아서면, 어떤 질문들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질문 자체가 무엇인지 잘 몰랐기에 대답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밤새 하얀 화면만 바라봐야만 했다. 반디(커서)는 앞으로 나가자고 깜빡이며 재촉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가슴속 어느 곳에서 누군가 먼저 해결해야할 것이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얼굴 없는 목소리는 커져만 갔다. 소설 속 시공간에 편입되어, 작중인물들과 함께 가슴을 치며 통곡하다가 문득 그 질문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것은 두 가지 역설적인 자문이었다. ‘과거의 현재성’과 ‘소설의 허구성과 진실성’이란 화두였다. 이 두 질문은 먼 길을 떠나면서 행장을 제대로 꾸리지 않았던 것에 대한 질책이었다. 소설 쓰기를 멈추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로 했다. 첫 번째 자문은 현재는 어디서 오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아갔다. 중첩된 과거들 사이에서 현재가 생산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과거는 현재의 뿌리인 것은 아닐까? 그리고 지금 이 시간, 현재라고 명명된 이 순간은 과거가 되고 그리고 미래의 바탕이 되는 것은 아닐까? ‘과거의 항구성과 현재성’은 연속된 시간 개념 속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정의하고 구획하기를 좋아한다. 시간을 계절별로 월별로 일별로 시간별로 초별로 결국에는 몇 만분의 일초까지 나누었다. 그렇게 잘게 쪼개어놓았지만 시간의 항구성까지는 그럴 수 없었다. 토막난 시간의 이면을 강물이 되어 도도히 흐르는 그것! 그 강물이 흐르고 흘러 오늘을 비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소설을 쓰며 그 근간, 강물로 표현했던 그것을 드러내고 싶었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만들었던, 독립지사들의 항구성을 그리고 현재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과거지만 과거가 아니고 현재이며 미래인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강물이 굽이치면서도 결국은 바다에 도달하듯, 강물이 그러듯, 그들이 그랬듯, 포기하지 않고 써내려가고 싶었다. 두 번째 자문은 소설의 모순적인 특성을 고민하며 답을 찾아야 했다. 소설은 태생적으로 허구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진실적이다. 작가에 의해 포착되어 문장이 되는 순간 그 어떤 진실도 허구성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 ‘소설 같은 이야기다’, ‘소설을 써라’ 등의 말을 한다. 가슴을 뛰게 만드는 독립지사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옮겨놓으려고 마음먹었다가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 그 골목 끝에서 서성이고 서성이다가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을 것이다. 그동안 써왔던 원고 뭉치를 잠시 묵힌 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전에 쓰던 방식이 아닌 ‘소설 같은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그것은 한 인물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나 일대기적 나열이 아니었다. 한 인물을 그렸지만, 그 안에 수많은 독립지사들의 삶들을 녹여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소설적 사실’을 쓰기로 마음먹으니 인물들의 삶이 더 다채로워졌다. 하지만 반대편에 또 다른 소설의 특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설의 진실성, 그것은 다른 차원에서 이해하기로 했다. 한 인물의 일대기적 고증을 소설의 사실성이나 진실성으로 보지 않았다. 더 큰 테두리 안에서 그것을 이해하기로 했다. 글 안에 그 시대 상황을 얼마나 녹여내는가, 그리고 그려진 시대의 모습이 현대에 얼마나 다가오는가, 그것이 소설의 진실성이라고 이해했다. 방황하며 찾은 답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정답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고민과 방황이 독자들에게 진실하게 다가갔으면 한다. 올 봄에 이사한 집 앞에 수령이 사백년이 넘은 버드나무가 버티고 서 있다. 아침마다 시간을 내어 그 나무 앞에 서본다. 아니, 그 시간의 기둥을 올려다본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동안 땅에서 물을 길어 가지 끝으로 보내왔을 그 흐름을 바라본다. 밑동에 귀를 대면 힘차게 물을 길어 올리는 소리가 들릴 것도 같다. 올해도 그 물질은 그치지 않아, 넉넉한 가지 끝으로 연초록 잎들이 돋기 시작했다. 사백년이라는 시간과 마주하는 가슴 벅찬 감정을 어떻게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과거라고 치부하고 잊어버릴 수 있는 긴 시간들이 바로 앞에 버티고 있다는 황홀함. 그리고 그 긴 시간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것들을 목격했을 나뭇가지들의 진실한 말들. 감히, 그런 것들을 이 소설에 담아내고 싶었다. 평화동에서 첫 봄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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