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인협회 회원
서울구치소 불교종교위원
군부대 상임법사, 대암사 주지
서울시 자원봉사교육전문강사 등 활동
KBS-1TV <이것이 인생이다> 출연
서울시 모범자원봉사자 표창
제4회 농촌문학상 시부문 최우수상
2022년 현)월드시니어유니온 위원장
「무상」, 「차라리 침묵하고」, 「촛불」, 「가신 님」, 「청산」, 「하얀 그리움」 등 많은 시가 가곡으로 작곡됨
저서 | 시집 『차라리 침묵하고』, 『가슴에 있는 사람』, 『그대의 그대가 되어』, 『꽃처럼 살고 싶다』, 『머무는 자리에서』 장편소설 『스쳐간 바람』 에세이 『내 가슴 가시를 빼내며』, 『미움에 대한 예의』
차마, 침묵할 수 없다.
남다른 인고(忍苦)의 삶을 살아야 했던 나는 젊디젊은 삼십 대 초반에 모든 것을 체념하고 무속인이 되는 길을 택하게 되었다.
그 선택은 나로 하여금 신(神)과 종교, 그리고 현실과 영혼세계 사이에서 숱한 갈등과 방황을 하게 했다. 그런 혼돈의 과정을 겪고 있을 때 하늘의 도움인지 불교계 큰스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렇게 해서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법사(法師)의 길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교도소 재소자들, 특히 사형수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었고, 내가 공부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D대학 불교대학원에서 불교학, 인도종교철학, 상담심리치료학 등을 공부하며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불교사회복지학, 비교종교학, 밀교(密敎)에서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밀교는 모든 종교의 모체이며 근본이다.
무당이 신(神)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신에게 휘둘리는 존재라면, 그 신을 다스릴 수 있는 힘, 그 힘은 오직 ‘나’ 자신에게 있다는, 즉 자아(自我)을 깨닫게 되었다. 집에는 신당을 차려놓았지만 밖에서는 요식업을 했다. 신과의 전쟁을 하며 그 풍파를 이겨내려는 몸부림이었다.
『금강경』을 독송하고 사경(寫經) 하며 마음을 점차적으로 다스릴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 평정을 찾고 지혜의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렇게 법사의 길을 가면서 사십 대 초반에 내 어머니가 창건한 사찰 대암사를 인수하고 삭발을 했다.
그때, 나는 드디어 내 인생이 안정되었다고 믿었다. 마음이 평화롭고 나름 행복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길지 않았다.
사이비 종교 교주로 사기꾼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이 나를 도우려고 했던 일이 오히려 아내인 나를 감옥으로 보내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비극으로 전개된 것이다. 아내가 그리 되자 그 충격과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남편은 내가 구속되고 얼마 후 눈을 감았다.
감옥에서 나는 남편의 기막힌 변사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단 5일의 귀휴로 그의 부검과 장례를 치르고 재수감되어 영어(囹圄)의 몸으로 차디찬 공간에서 피를 토하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사계절을 보내고 다시 세상으로 나왔을 때, 나는 내 몸 하나 의지할 곳이 없는 미아 신세가 되어 있었다. 머물 곳도 없고 남편도 가고 그야말로 허공에 떠도는 홀씨가 되어 빈 하늘을 맴돌아야 했다.
정신줄을 여러 번 놓기도 했었다. 숨을 쉬고 있으니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사람 노릇을 할 수가 없었다. 태중의 아기가 태어나 목을 가누고 걸음마를 배우듯, 그렇게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허허벌판에서 빈 몸으로 새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기막힌 운명을 맞은 것이다.
칠십을 바라보는 지금, 내가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