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무렵부터 틈틈이 쓰기 시작하여 올해까지 십여 년 동안 쓴 글들을 모았다. 틈틈이 썼다고는 하지만 대체로 어느 한 시기에 집중해 쓴 글이 많다. 먹고사는 일에 쫓기고 쓸데없는 생각에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예까지 왔다. 거기에다 게으르고 우둔함을 더해 모냥없이 성글기만 한 글이 되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굽히지 않고 오게 된 건 어머니 힘이 크다.
나는 이 책에 되도록 어머니 말을 많이 담으려고 애썼다. 그렇다고 어머니 이야기만 쓴 건 아니다. 어려서 떠나온 고향의 아련한 기억, 전주공단이 있는 가난한 팔복동 사람들, 쓸쓸함도 포근히 품었던 천변 풍경, 사춘기의 끝없는 울분과 눈물 이런 것들이 이 책엔 되나캐나 함께 뒤섞여 있다. 끝끝내 기억하고 싶지 않거나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일들도 한식구처럼 따숩게 가슴을 맞대고 있다. 이제는 그만 흐르는 물가에 가만히 놓아주고 싶은 정든 풍경들이다.
올해 어머니는 우리 나이로 여든일곱이다. 좀 더 어머니가 건강했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기록해 두었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면서도 한편, 내가 쓴 글보다 어머니의 함몰된 오른쪽 유두와 기묘한 암석 같은 굽은 발톱을 보여 주는 게 백배 천배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마음을 못내 떨쳐내면서 한밤중 잠이 깬 나는 어머니, 하고 가만히 불러 본다.
2023년 가을
유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