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예이츠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데 이 책에서는 특히 맨 마지막의 <건설자들>이 그러해서 울림이 크다. 작품의 화자인 '나'는 세 가지의 역할-가장으로서 의무감에 시달리는 이십 대 초반의 남성, 헤밍웨이처럼 낭만적으로 살며 걸출한 작가가 되고 싶지만 실상은 택시 운전사의 대필 작가로서도 갈팡질팡하는 작가 지망생, 지난 시절을 회고하며 소설 작법의 기본을 설명해주는 삼십 대 중반의 작가이자 교수-을 하고 있다. 화자는 무지하고 오만했던 이십 대의 자신이 상처를 준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동시에 자신도 그들의 부족함을 기꺼이 감싸 안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주며,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고독한 참회의 시간을 견딘 인물이 바로 자신이라고 고백하는 것 같아서 읽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다중적인 여운을 남기는 작품은 흔하지 않다. 정제된 언어가 빚어낸 이미지의 잔상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신선하고 진한 향기를 뿜어내는 작품은 더욱 드물다. 리처드 예이츠의 글은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해서 읽을수록 새로운 의미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묘한 특징이 있다.
서성이고 흔들리는 우리 삶의 단층을 독창적이고 품격 있게 그려냄으로써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가려진 것들의 소중하고 깊은 의미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과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해준 작가에게 경의와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