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글을 쓰는 일이란 불 꺼진 마네킹의 조명을 밝히는 일과 같았다. 내 영혼의 불을 밝혀놓는 일, 내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일, 내가 살아 있음을 매순간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아궁이의 불씨를 오랫동안 지켜온 종가의 종부들처럼 내 안의 불씨를 간직하기 위해 쉼 없이 글을 써야 했다. 마음먹은 대로 글이 써지지 않아 때로는 좌절하고, 주저앉고 싶은 날들이 많았지만 불씨를 꺼뜨릴 수는 없었다. 불씨가 꺼지는 순간, 삶의 동력도 멈출 것이었기에.
여기에 실린 아홉 편의 단편들은 나의 한때를 잠시나마 환하게 밝혀주었던 이야기들이다. 갈무리하여 세상에 선보이기 전, 아홉 편의 글을 추려놓고 읽다보니 내가 관심을 가졌던 주제나 대상들이 세월의 고비마다 조금씩 형태를 바꾸며 발화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치기어린 생각이나 편견, 거친 문장들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내가 살아낸 흔적이기에 크게 손보지 않고 싣기로 했다. 내게도 이런 시간이, 작가의 말을 쓸 시간이 오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다. 책을 내는 일은 이름을 얻은 작가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라 치부했다. 나의 소박한 바람은 거미가 실을 잣듯 끝없이 글을 짓는 일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