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5월경으로 기억된다. 위스콘신 대학의 매디슨 캠퍼스 education building 3층의 어느 한 연구실에서 작은 체구에 둥근 안경을 쓴 모범생 같은 인상을 주는, 여유롭고 인자한 모습의 한 교수님을 처음으로 뵈었다. 이분이 바로 이 책의 주 저자이기도 한 Bruce E. Wampold 선생님이었다. Wampold 선생님은 유학 중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기꺼이 지도교수님이 되어 주셨던 분이었다. Wampold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이 책의 대표역자인 김계현 선생님의 학위논문 지도교수님이기도 하다. 그리고 김계현 선생님은 나의 석사 학위논문 지도교수님이었다. Wampold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은 거의 전적으로 김계현 선생님의 도움 덕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Wampold 선생님의 책 The Great Psychotherapy Debate(2판)를 김계현 선생님과 함께 번역하는 작업은 나에게 무척 의미가 깊은 일이다. 물론 다섯 명의 동료와 함께 한 작업이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다. 번역 작업을 하면서, 서로의 관점과 의견을 나누는 일은 서로 간의 유대감을 느끼며 지적으로 확장되는 경험이었다.
이 책은 Wampold 선생님이 상상력과 창의성을 가지고 수행한 구체적인 학문적 성과물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Frank & Frank(1992)의 저서 Persuasion and Healing에 제시된 기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다. Wampold 선생님의 놀라운 점은 이 기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쟁점을 부각하고, 그 쟁점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증거가 어떤 성격의 것인지를 논리적으로 설정하였다는 것이다. 얼핏 아무 일도 아닌 듯, 누구나 할 수 있는 듯 보이지만,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을 치열하게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이런 작업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을 요하는지를! 우리는 이런 과정 끝에 나온 결과를 놓고 그 사람의 생각이 ‘창의적’이라고 한다. 기존의 아이디어와 기존의 경험적 연구 결과를 연결한 것에 불과하지만 이런 연결이 세상에 없던 것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글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글은 오히려 분명하고 대단히 논리적이다. 그것보다는 상담과 관련한 한국과 미국의 제도가 다르다는 점, 그리고 논리적 추론의 근거를 이해하기 위해 연구방법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메타분석, 임상실험, 실험 설계와 이에 따른 통계적 분석 방법 등은 양적 연구방법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 벽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도리 없이 연구방법을 어느 정도 공부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면, 이 책에서 시사하는 바가 상담을 공부하는 우리의 기존 관념과는 다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상담의 효과가 각각의 상담이론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경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니! 그렇다면 왜 상담이론을 배우고, 수퍼비전을 받아가며 상담 기법을 배우는 것인가? 이런 의문은 역자도 가졌던 바 있다. 그러나 이후 학위논문 제출을 위한 자격시험을 준비하면서 여러 관련 논문과 Frank & Frank(1992)의 Persuasion and Healing을 읽으면서, 이런 관점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제시된 이슈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이해에 도달하리라 생각한다. 거기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본 ‘해설자’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이 책의 기본 아이디어를 제공해 준 Persuasion and Healing를 먼저 읽어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듯하다.
2021년 12월
김 동민(역자 중의 1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