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의 젊은 시절 음식점 배달원, 세차장 점원, 복사기 영업사원, 야학 교사를 거쳐 스물여덟 살에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서 사진을 전공했다. 렌즈 안에 세상의 모든 것을 담고 싶어 했지만, 졸업 후 진보정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두 번 출마하면서 전공을 정치로 바꿨다.
하지만 여전히 인생의 전공은 짝사랑. 어른들의 말로는 이미 다섯 살 때 세발자전거 뒷좌석에 동네 여자아이 둘을 태우고 입이 찢어져라 좋아하며 페달을 밟았다고 한다. 짝사랑의 상대가 어디 사람뿐이랴. 세상에 대한 나의 짝사랑도 끊임없다. 스무 살이 넘어서 가슴앓이 때문에 가출을 했던 것처럼 세상에 대한 짝사랑으로 ‘유럽 민중의 집’ 탐방을 위해 먼 길을 나섰다. 경험상 짝사랑의 덕목은 끈기와 집요함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 또한 이와 다를까?
초등학교 1학년, 모두가 하교하고 나면 텅 빈 교실에 남아 짝꿍의 책상 속에 연애편지를 넣곤 했다. 다음 날 짝꿍이 점심시간에 내 책상 속에 답장을 넣어주면 기쁨으로 학교 전체를 번쩍 들어 올릴 것만 같았다. 이 책은 마흔 살이 넘어 세상을 향해 쓴 연애편지다. 그 옛날 짝꿍이 그랬던 것처럼 부디 답장이 오기를 바라는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