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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룡자가 이전(二田)이고 만년에는 스스로를 삼산창부(三山?父)라 불렀다. 청 강희(康熙) 18년(1679) 무석현(無錫縣)의 전간촌(前澗村)에서 태어나 건륭(乾隆) 27년(1762) 83세의 나이로 죽었다. 과거에 낙방한 후 저술에 뜻을 두고 10여 년의 노력 끝에 두보(杜甫)의 시작(詩作)에 대한 연구서라 할 수 있는 <독두심해(讀杜心解)>를 완성하고, 옹정(雍正) 8년(1730) 51세의 나이로 진사에 합격한 이후 곤명(昆明)의 오화서원(五華書院) 산장(山長), 소주부학(蘇州府學)의 교수를 지내면서 <좌전>·<국어> 등 고적의 역대 평주(評注)에 교감과 자신의 평주를 더하여 <고문미전(古文眉銓)> 79권을 완성하였다. 건륭 10년(1745)에 관직을 물러난 후 건륭 4년(1739)이래 관심을 가졌던 <사통> 주석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건륭 12년에 그 초고를 완성하고, 다시 5년 동안의 보완과 수정을 거쳐 건륭 17년(1752)에 정식으로 <사통통석(史通通釋)>을 간행하였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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