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격전지였던 낙동강을 끼고 있는 창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전쟁을 경험한 많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주변의 전쟁 잔해를 보면서 성장했다. 이는 전쟁 역사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마산고교를 졸업하면서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했다.
1977년 장교로 임관 후, 전쟁과 한반도의 운명을 늘 고민하면서 다양한 야전 생활을 경험했다. 영국 런던 King’s College 전쟁학과 정책연수 시에는 유럽·중동 지역 전쟁 유적지를 답사하며 관련 자료들을 축적했다.
2009년 군에서 전역한 후, 본격적으로 세계 약 50여 개국의 군사박물관·격전지 현장을 방문했다. 특히 배낭여행 간 현지 주민 및 참전군인들의 증언을 들으며 생생한 실전 상황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또한 합동군사대학교 군전임교수, 조선대 군사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하면서 전쟁 역사의 중요성을 후학들에게 강의했다. 현재는 세계 분쟁 지역을 수시로 답사하면서 『신종태 교수의 테마기행』 시리즈를 계속 집필 중에 있다
△ 학력
•육군사관학교 졸업(이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행정학과 졸업(행정학 석사)
•영국 런던 King’s College 전쟁학과 정책연수
•국방대학원 안보과정 졸업
•충남대학교 대학원 군사학과 졸업(군사학 박사)
필자는 어린 시절 6ㆍ25전쟁의 격전지였던 낙동강 근처 시골에서 성장했다. 당시 전쟁이 끝난지 10여년이 지났지만 고향 산야에는 전쟁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미군 철모, 포탄 탄피, 경비행기 바퀴 등은 유용한 생활 도구로 사용되었다. 수업 시작과 끝을 알리는 초등학교의 종도 길쭉한 포탄껍데기였다. 마을 주변 야산 교통호 흔적은 동네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가 되었고, 한여름 밤 정자에 모인 어른들은 수시로 전쟁참상과 피난길 고생담을 이야기 하곤 하였다. 집안 어른들의 대부분이 참전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 삼촌, 외삼촌 그리고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상을 입은 고모부 등으로 인해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전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전쟁에 대한 관심과 위국헌신(爲國獻身)이라는 순수한 가치에 매료되어 필자는 군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 것인가? 인류기록 역사 3400여 년 중 전쟁이 없었던 해는 불과 270여 년, 총성이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았던 날은 3주에 불과하다. 지금도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지역 일부에서 끝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군생활 동안 더더욱 전쟁사에 관심이 많아졌고 해외유학, 휴가기간 중에는 틈틈이 외국의 전사적지를 답사하였다. 전역 후 다소 시간적 여유를 가진 시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유럽, 중동,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전적지를 다시 돌아보았다. 평소 주말에는 낙동강, 금강, 섬진강 주변 전사적지와 백령도 등 현지를 방문하여 많은 사람들의 전쟁체험기를 듣기도 하였다.
이런 답사를 통해 항상 느껴왔던 것은 전쟁으로 인해 우리 민족은 수많은 수난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전쟁에 대해 거의 관심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세계 약 80여 개 국가의 전쟁유적지를 방문하면서 단 한 번도 현장에서 한국인을 만나보지 못했다. 외국 전쟁기념관이나 전사적지 현장에서 일본인, 중국인들은 수시로 만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들의 해박한 전쟁사 지식에 깜짝 놀란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한국전쟁에 대해 우리들보다 훨씬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 초ㆍ중학생 약 절반이 70여 년 전의 6ㆍ25전쟁을 조선시대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안다는 어느 일간지의 보도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 청소년들에게 제1ㆍ2차 세계대전에 관해 물어보면 대부분 정확한 역사지식을 이야기하곤 한다. 어떤 학생들은 자신의 할아버지, 삼촌의 참전 경험과 심지어 할머니의 전시생활상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쏟아 내기도 하였다. 영국은 자기 조상들이 당당하게 침공군에 맞서 일치단결하여 전쟁에 임한 자랑스러운 승전의 역사를 끊임없이 가정, 학교, 사회에서 가르쳐 왔던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뿌리 깊은 문존무비(文尊武卑)사상이 현재까지 수 백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특히 전쟁을 대비하고 국가보위를 위해 헌신하는 무인을 존중하고 제대로 대우해 준 경우가 고려시대 이후에는 거의 없었다. 또한 ‘전쟁과 상무정신’을 논하는 것은 오히려 평화를 깨뜨리고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주장으로 매도하여 경계의 대상으로 삼는 분위기가 아직도 있다. 결국 이런 전쟁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하여 17세기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백성들은 말할 수 없는 참혹한 전란의 고통을 당해야만 했다.
근ㆍ현대사에서도 우리 한민족은 다시 한 번 가시밭길을 걸었다. 일제식민지 36년,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문약에만 흘렀던 우리국민들은 그저 남의 전쟁에 위안부ㆍ징용노무자ㆍ강제지원병 형태로 성노예나 총알받이로 끌려 나가야만 했다. 이와 같은 형극의 역사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안타깝게도 점점더 전쟁에 대해 무관심한 분위기에 젖어들고 있다. 남태평양의 괌ㆍ사이판ㆍ티니언 일대를 답사하면서 조선인관련 전쟁유적에 대한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또한 75년 전 이 땅을 잿더미로 만들었던 6ㆍ25전쟁유적지도 전국에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점점 더 이런 전사적 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찾는 발길은 줄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 역사교과서 파동이나 이념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6ㆍ25전쟁을 통일전쟁 혹은 내전으로 규명하여 자유수호를 위해 목숨 바친 선열들의 희생을 애써 깎아 내리려는 듯한 분위기까지 있다. 결국 이런 왜곡된 역사인식의 확산은 급기야 신세대들에게 전쟁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상대적으로 평화만을 부르짖는 자만이 이 시대의 선구자인양 인정받아 우리의 생존문제는 저만큼 뒤로 물러나고 오로지 ‘무상복지’가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고 말았다.
빠듯한 일정으로 많은 국내ㆍ외 전사적지를 답사하면서 나름대로 정리한 글이라 다소의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독자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한다. 아무쪼록 본 책자가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서도, 한반도의 안보현실과 전쟁역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영원한 추방을 염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