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겸 작곡가. 독일의 슐레스비히흘슈타인의 테닝크에서 태어났다. 라이프치히에서 슈트라우베와 그라프너에게 교회 음악을 공부하였고, 이어서 다름슈타트에서 아르놀트 멘텔스존을 사사하여 작곡법을 배웠다.
21세 때 라이프치히 음악원의 이론과 작곡의 강사가 되었고, 1928년에는 라이프치히의 교회음악연구소의 합창단의 지휘도 담당하였다. 1934년부터는 베를린의 호흐슐레의 교수로 취임하였으며, 1939년부터 1945년까지 프랑크푸르트의 음악 김나지움의 교장이 되었다. 1945년부터 1956년까지는 프랑크푸르트의 삼왕 교회의 칸토르가 되었으며, 이것과 병행하여 1947년부터 1955년까지는 데트몰트의 북서독일 음악 아카데미의 교수도 겸임하게 되었다.
1955년에는 바흐에서 유래한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 및 성 토마스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1961년 자유를 찾아서 서독으로 망명 하였으며, 쾰른 바흐 협회와 프랑크푸르트 합창단의 지휘자가 되었다. 그는 합창곡을 포함한 작품과 합창 지휘법 등에 관한 저서가 있고, 1925턴부터는 독일의 프로테스탄트의 교회 음악의 재조사를 하기도 했다.
레코드는 바흐의 [코피 칸타타]와 [농민 칸타타]의 커플링(그라모폰)이 매우 잘되어 있고, 또 아름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