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천(永川)이며 자는 응칠(應七), 호는 강해산인(江海散人)이다. 그는 어려서 영특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효동(孝童)이라 불렸다. 1817년에 제주 대정현의 현감이 된 장인의 간곡한 청으로 5월 제주도에 함께 갔다. 1년 동안 제주를 두루 보다가 1818년 4월에 귀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도중에 큰 풍랑을 만나 16일 동안 표류하다가 중국의 강남지역에 발을 딛었다.
제주도에 있을 때 지은 시편, 바다에 표류하는 어려운 상황, 육지에 내린 뒤에 중국 강남의 풍속과 산천 명승, 중국의 선비와 시장(詩章)을 서로 화답한 것, 필담으로 문답한 것, 가옥?의복?농사?무덤?배와 수레 등의 이야기를 날마다 기록한 《승사록》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