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작가회의에서 오사카와 교토로 디아스포라 기행을 간 적이 있다. 오사카 조선인 마을을 보고 와서 재일조선인의 소설 몇 편을 읽었다. 그다음 해 부산소설가협회에서 부관연락선을 타고 시모노세키를 갔다 왔고, 몇 년 뒤 어느 단체를 따라 조선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이 글을 쓸 때쯤 ‘동포-넷’이란 걸 알았다). 3박 4일인지 4박 5일인지 짧은 일정이었는데, 조선학교를 지켜온 분들을 여럿 만났다. 어린 시절 해방을 맞았던 분들이셨다. 분단 상황이 이런 모습으로, 이렇게 오래갈 줄 정말 몰랐다, 일본 사람들이 통일도 못하는 나라라고 무시하는 것 같다며 나이 많은 분이 눈물을 보였다. 그 눈물을 잊을 수 없었다. 하나 더 있다. 지하철역에 붙은 원폭 피해자 구술 관련 포스터를 보고 한 단체에 전화를 했다. 떨어질까 봐 가슴 졸이며 면접을 봤고 한여름에 구청 근처 사무실로 원폭 피해를 입은 분들의 구술을 받으러 다녔다. 소설의 시작은 이 네 가지 사건이었다.
스무 살에 빨치산이 된 재석과 원폭 피해로 남편을 잃은 향자는 내가 만난 그 누구도 아니지만 누군가의 모습을 조금씩은 닮아 있을 것이다. 소설은 결국 누군가, 누군가의 마음이 문장 속으로 들어오는 일이라는 걸 말해도 될까. 이제 나는 소설을 시작하는 문장 몇 개와 끝 문장 몇 개를 외울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