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림책 미술관 여행’을 합니다. 생명, 사랑, 그리움이 담겨 있는 그림책을 옮길 때 가장 행복하지요. 《숲으로 읽는 그림책테라피》, 《우리는 서로의 그림책입니다》의 글을 썼고, 《내가 엄마를 골랐어!》, 《내가 나를 골랐어!》, 《외계인 친구 도감》, 《동그라미 세상이야》, 《호박 목욕탕》과 <나를 키우는 질문> 시리즈 들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사람이 나면서부터 갖는 많은 능력 중 가장 놀라운 건 단연코 ‘상상력’입니다. 아쉽게도 이는 어른이 되어 가면서 점점 굳어 버리지요. 누군가 말랑말랑한 상상력의 판을 지녔다면, 그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란 뜻일 거예요.
사실 상상력은 어린이들이 가진 가장 큰 재산입니다. 상상의 세계는 작고 힘없는 어린이가 현실을 이겨 내는 힘이며, 힘센 어른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곳곳에 놓아 둔 제약과 규제를 요리조리 피해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 냅니다. 상상력이란 어린이의 피난처이자 오아시스인 셈이지요.
“우리 아이는 보자기 한 장, 막대기 하나만 있으면 온종일 놀아요.”
정말로 아이들은 별것 아닌 물건 하나로 몇 시간이나 놀 수 있습니다. 상상의 세계를 누비는 거지요. 연령이 어릴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좀 더 자라면 여럿이 어울리면서 이 세계는 더 확장됩니다. 흔하디흔한 보자기가 마법 양탄자가 되고, 배가 되고, 연못이 됩니다. 보자기를 두 눈으로 보자마자, 아이의 머릿속에서 끝없는 여행이 시작되는 거예요. 『가게 놀이 할 사람?』에 등장하는 친구들의 돗자리도 상상 속에서 가게가 됩니다. 그들은 마녀의 세상으로 날아가 한바탕 가게 놀이를 하고 돌아옵니다. 이를 들여다본 어린이들의 상상은 어디까지, 어떻게 뻗어 나갈까요?
아이들은 풀꽃으로 김치를 담그고, 진흙으로 밥을 지어 어른들에게 상상 속 역할을 나눠 줍니다. 우리도 최선을 다해 맛있게 먹고 대꾸해 줍니다. 우리도 모두 그런 어린 시절을 지나 왔으니까요. 잊고 있던 감정이 뭉근하게 올라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몇 번씩 반복되는 아이의 놀이에 짜증날 때도 있습니다. 현실감 없고 귀찮으니까요. 어느 날, 아이의 눈에도 진흙이 주먹밥으로 보이지 않게 되겠지요. 점점 물건의 원래 기능만 생각하게 되며, 어느 순간 놀이를 멈춥니다. 그제야 우리는 아이가 차려 주던 밥상이 그리워집니다.
상상력은 어린이가 오직 자기 힘으로 만들어 낸 근사한 비밀입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가끔 상상의 세계로 떠날 때가 있습니다. 내 힘으론 안 되는 간절한 일을 상상력을 빌려 꿈꾸곤 하지요. 그러면서 스스로를 달랩니다. 책 속 아이의 주머니에 남은 유리구슬은 그 상상의 씨앗이자 증거입니다. 이처럼 상상하는 어린이의 세상을 인정해 주는 어른들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즐겁게 대꾸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이는 이 유리구슬로 다음 세상을 꿈꿀 테니까요.
혹시 우리 아이의 주머니에도 유리구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