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무회의록 1959~60은 이승만 정권 최후 2년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료의 보고다. 특히 이 시기의 기록에는 국민과 민주주의에 대한 이승만의 상반된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예컨대 1959년 1월 13일 열린 제4회 국무회의에서 이승만은 정계 수습 방안을 논의하면서 “수가재주(水可載舟)요 수가복주(水可覆舟)”라고 훈시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순자(荀子) 왕제(王制)편에는 임금을 배에, 백성을 물에 비유한 표현이 덧붙여 있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 이처럼 이승만은 정치지도자라면 마땅히 민심의 향배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동양의 격언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1959년 12월 8일 열린 제117회 국무회의에서 “공맹지도(孔孟之道)는 서양의 철학보다도 위대한 정치철학이라는 것을 명심하라”는 분부(分付)를 내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