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서문
의사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의술과 약으로 병을 치료, 진찰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그‘의사'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지 이제 8년째 접어들었다. 감히 어디 내놓을 수 없는 짧은 경력이지만 내 생애 4분의 1이 되는 세월이다. 그 세월동안 나는 어떠한 의사로 살아왔을까. 처음 의사가 되어야지라고 마음을 먹었던 때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 누구나 그렇듯 아픈 사람 치료해주는 훌륭한 의사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지금의 나는 과연 훌륭한 의사선생님인가. 훌륭한 의사선생님이 어떠한 의사선생님인지 알고 있는가.
의술과 약으로 병을 치료하고 진찰하는 사람. 이 간단한 정의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병이 아닌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자 한다면 이는 더 복잡해진다. 질병의 치료는 의술과 약이 한다. 그러나 사람은 의술과 약만으로 치료되지 않는다. 우리가 만나는 아픈 사람들은 누구 하나 똑같지가 않다.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그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기에 진정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자 한다면 환자에 대해 알아야 하고 고려해야 할 것들이 엄청나게 많고, 그것을 얻기 위한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며, 얻어진 정보를 올바로 해석하고 적절한 치료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의학적 지식을 전해주는 책은 많이 있다. 그러나 환자와의 첫 의료면담부터 사전 지시서(living will)까지, 전공의의 수면에서 복장까지, 의사들의 체면치레와 관습으로 인한 부조리까지 짚어주는 책은 흔하지 않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놓치기 쉬운 중요한 의학적 지식뿐 아니라 의과대학 시절부터 인턴, 전공의를 거치면서 늘 겪게 되지만 쉽게 배울 수 없는 다양한 문제들에 관해 짚어주고 조언해준다. 일상감각과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사회성 없는 의사로서 겪게 되는 문제를 환자와 가족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우리가 치료하고자 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고려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환자가 진정 의사에게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의사로서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해준다. 이 책이 나와 같이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많 은 동료와 선후배들에게 현재의 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12년 4월
윤 상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