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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헌조선 후기의 무신으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1876)와 조미수호통상조약(1882)을 체결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자는 국빈國賓, 초명은 관호觀浩였다가 고종 조에서 헌櫶으로 개명했다. 호는 위당을 비롯해서 금당琴堂, 동양東陽, 우석于石 등을 썼다. 순조 27년(1827)에 조부의 음직蔭職으로 별군직에 임용된 것을 시작으로 헌종 조와 고종 조에 이르기까지 무반의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했다. 무장이면서도 서예와 문장에 능하여 당대에 유장儒將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국방에 관해 올린 그의 상소문들은 고종 조의 강병정책强兵政策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고종 4년(1867)에 위원魏源의 《해국도지海國圖志》에 수록된 도설圖說에 따라 마반차磨盤車와 수뢰포水雷砲를 독자적으로 제작했으며 고종 11년(1874)에 진무사 겸 강화유수에 제수되었을 때 강화도 연해에 50여 개 포대를 창설했다. 저서로는 《민보집설民堡輯說》, 《융서촬요戎書撮要》 등이 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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