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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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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큰글자책] 육기 시선>

육기

오나라 출신으로 서진(西晉) 시기 낙양에서 활동한 문인이다. 유비의 군대를 패퇴시켰던 육손(陸遜)이 그의 조부다. 조부 육손은 승상을 지냈고, 부친 육항(陸抗)은 대사마를 지냈으니 그의 집안은 오나라 최고의 명문가다. 육기는 가문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해 많은 문장에서 선조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280년 서진이 오나라를 침공하자 육기도 부친의 병사를 이끌고 참전했는데 결국 오나라는 멸망했다. 전쟁이 끝난 후 전쟁 포로가 되어 낙양에 압송되었다가 돌아왔다. 289년 육기는 다시 아우 육운을 비롯해 고영(顧榮), 주처(周處) 등과 함께 낙양으로 갔다. 남방의 인재를 발탁한다는 서진의 정책에 따른 것이었다. 육기는 조국이 멸망한 마당에 낙양에서 다시 가문을 부흥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본래 오나라 학풍은 한나라의 유학을 계승한 보수적 성향이 강한데 육기 집안은 더욱 그러했다. 육기 역시 “예가 아니면 거동하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근엄하고 진지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육기는 패망국의 자손이었고 낙양은 전승국의 수도였다. 게다가 낙양의 명사들은 당시 노장사상에 기초한 현학을 신봉하고 있어서 문화적으로도 육기와 많은 충돌이 있었다.
당시에는 태자를 중심으로 한 동궁 세력, 가씨 일파의 외척 세력, 팔왕(八王) 등의 황실 세력이 서로를 견제하며 정치적 대립 관계를 형성했으므로 이들의 역학 관계에 따라 많은 사람이 화를 입었다. 후대인들은 육기가 당시의 권력자 가밀(賈謐)을 추종해서 화를 자초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가밀을 추종한 것은 육기가 ‘이십사우(二十四友)’에 가담한 일을 말한다. 가밀은 황후인 가남풍(賈南風)의 후광을 입고 권력의 실세를 자처했는데 재능 있는 문인을 모아 ‘이십사우’를 결성했다. 이 모임은 순수한 문학 집회가 아니라 정치적인 색채가 농후한 모임이었다. 육기는 가밀의 요청으로 이 모임에 가입했지만 내부적으로 다른 문인들과 교류도 없었고, 최후에는 이 모임 구성원들에게 모함을 받아 죽음을 당했다. 이런 일들을 보면 육기에게는 패망국 출신으로 전승국의 수도에 와서 입신을 도모해야 하는 처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낙양의 문화적 분위기를 주도하던 명사들과도 원만한 관계가 아니었으므로 낙양에서의 생활이 상당히 외롭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실은 그의 문학이 끊임없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게 된 배경이 된다.
육기의 시문은 육기가 낙양에 오기 전부터 낙양 문인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육기 형제가 낙양에 왔을 때 당시 문단의 영수 장화(張華)가 “오나라를 평정한 이익은 두 준걸을 얻은 데 있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낙양 문인들에게 최고의 문인으로 인정받았고 남조(南朝) 문인들에게도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남조의 문학 이론서인 《시품(詩品)》은 육기의 시를 상품으로 분류하고, 육기가 조식(曹植)과 사영운(謝靈運)을 잇는 대작가라고 평가했다. 문학작품 선집인 《문선(文選)》에서도 남조까지의 작품 중에서 육기의 작품을 가장 많이 수록했다. 이러한 사실은 남조 문단에서 육기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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