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일찍 연기를 시작했으나 사실 지금도 배우라고 스스로를 규정짓는 일이 어색하다. 다만 데뷔작인 드라마 <은실이>에서 보여준 악역 연기로 TV 바깥에서 동네 아주머니에게 ‘너 너무 못됐더라’라며 등짝을 맞았던 그 짜릿한 순간을 선명히 기억한다.
영화 <올드보이> <웰컴 투 동막골> <연애의 목적>에서처럼 고유한 결로 연기하고자 했던 ‘배우 강혜정’에서 ‘사람 강혜정’으로서 첫 에세이를 집필하게 되었다. 정자세로 앉아 노트북이나 원고지에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반쯤 누워 한 뼘 휴대폰에 떠오르는 것을 톡톡 두드려 넣는 시간 동안, 쓰는 일이 나다워지는 일이며 나를 구원하는 방식이구나 싶었다. 무수한 타인으로 살아가는 배우로서가 아닌 그저 나 한 사람으로서 살아오며 느꼈던 기분좋은 어색함과 두근거림, 그리고 잔인한 물결들을 지금 이 책에 고스란히 잇대고 싶다는 열망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