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시 주변에서 배회했다. 간혹 시가 얻어걸릴 때도 있지만 그때뿐이다. 그동안 달랑 시집 한 권 내고도 아무 일 없이 잘 지냈다. 자본의 무한 증식과 하루가 다르게 엄청난 속도로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한가롭게 시를 쓰는 일은 남들에게 찌질하게 보이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타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나를 중심으로 돌다가도 타자를 중심으로 돌기도 하고, 타자를 중심으로 돌기도 하다가 나를 중심으로 돌기도 한다. 아니 나와 타자의 경계가 무너져 내가 도는지 타자가 도는지 아니면 나와 타자는 그대로 있는데 세상이 도는지조차 구분이 잘 안 된다. 어지럽다. 그게 삶이고 거기서 시가 생성된다. 이제야 두 번째 시집을 낸다. 굉장한 은총이다. 살아오면서 느낀 경이와 탄식과 절망이 깃들어 있는 작은 시집을 당신에게 보낸다. 꽃가루 뿌옇게 날리는 봄이 돌아눕는다.
조팝꽃 지고 감자꽃 피는 봄의 끝 계룡산 자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