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잃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들을 수 없는 갈증과 우울과 기다림을 만 가지 천으로 조각조각 이어 붙여 바느질하였습니다. 그렇게 만든 비단 조각보 한 장을 제게 주었습니다.
나는 그이의 조각보를 가까이 두고 자주 들여다봅니다. 덧댄 천 조각에서 소리를 잃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건너온 시간들을 돌아봅니다.
나는 마더였고,
700년을 가라앉은 폐선에서 잠자는 기다림이었고, 첫눈이었고 게르의 문 앞에서 서성이는 잠 못 드는 여자였고, 詩! 절창의 한 편 얻고 싶어 목숨 내놓고자 하는 흥정꾼이고, 어디에도 닻을 내리지 못한 떠돌이였을까요.
시인이 걸어온 生의 편린들을 덧댄 이 시집이 누군가 가끔 들추어 보기도, 덮어주기도 하는 그런 조각보가 될 수 있을지…(시의 위의가 어찌 조각보에 견주랴 하겠지만)
바람이 찹니다. 문을 닫고 돌아앉아 150년도 더 된 먼 지난날에 라인강에 투신을 기도하기도 했던 슈만을 듣습니다. 누구나 한두 번 뛰어들고 싶었던 절망의 시간 있었겠지요.
150년을 함께 하자던 그대 당부가 아직도 유효한지 묻습니다.
2021년 5월
유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