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게 좋아하지 않으면 뭐든 시작하지 않습니다. 이루지 못할 꿈을 꾸고, 그 일을 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더 큰 꿈을 꾸고 자신이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일이 즐겁습니다. 혼자 쓰는 일이 외로워서 아이들을 함께 글쓰는 친구로 만들었습니다. 뭐든 겁 없이 시작하고, 자주 망하고, 때때로 해냅니다.
예천여자중학교에 발령받은 첫 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가영, 못 하는 것이 없는 다은, 쓰는 것이 모두 시가 되는 주현의 담임이었다. 국어 시간에 글쓰기 수업을 제대로 하고 싶어서 매일 글쓰기로 수업을 열었다. 처음에 아이들은 오늘 또 쓰냐고 했다가 나중에는 오늘은 안 쓰냐고 물었다. 이 아이들을 만난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자꾸만 쓰자고 하는 나에게 아이들은 매번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는 쌓였고, 아이들은 더 잘 쓰게 되었다. 그 해 우연히 아이들의 글을 모아 보낸 백일장에서 주현이의 시가 장원을 차지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지나고 모두 다른 반으로 흩어졌다.
다음 해 3월 가영이가 교무실 문을 반쯤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면서
“선생님, 올해는 책 같은 거 안 써요?”
라고 묻기 전까지 아이들과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것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아이들과 함께 출판한 기억은 끝내주게 좋았지만 정말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지 가영이의 말에 그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다시 모인 것은 올해 3월. 나는 첫 부장을 맡아 서류가 책상 양옆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가영이와 주현이가 여러 번 찾아와서 “올해는 진짜 안 하실 거냐?”라고 물었다. 그때마다 나는 양옆의 서류로 화면 가득 채운 공문들을 보여주면서 올해는 진짜 못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여러 번 찾아온 아이들을 보시면서 앞에 계신 내가 좋아하는 선배 선생님께서 “올해 애들이랑 국어 교과 수업도 안 하는데 같이 해 주면 어때요? 저렇게 하고 싶어 하는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흔들렸다.
“얘들아, 올해 출판해 볼래? 우리가 같이 쓴 소설집.”
아이들은 좋다고 말했고 나는 들떴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설을 쓰게 되었다. 소설을 함께 쓰면서 아이들에게 바로 사과했다. 작년까지 아이들의 글에 피드백만 하다가 막상 써 보니, 소설 쓰기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 작디작은 책을 쓰면서, 자꾸만 속상해졌다. 더 잘 쓰고 싶은데 마음처럼 잘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아이들이 속상할 때마다 다정하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더 욕심을 부릴 때가 많았다. 아이들은 잘 모를 것이다. 내가 얼마나 아끼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신들이 대단한지 아이들은 쓰고 또 썼다. 여기에 남긴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썼고, 많이 지웠다. 그 시간까지도 모두 알아봐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