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생. 그리 많지 않은 나이로 내는 작품마다 주목을 받는 작가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니 '동화'라는 장르로 아이와 어른까지 고루 아우른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그의 동화관은 어떤 것일까? 작가 황선미 선생님을 만났다. 서울역에서 광주행 기차를 타고 4시간 넘는 여행이었지만, 인터뷰 준비과 정리는 즐겁기만 했다. (인터뷰 | 알라딘 편집팀 어린이 담당 이예린)
늘 글쓰는 습관이 붙어 있어요
알라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황선미: 작품에 몰두하고 있어요. 내년까지 원고가 밀려 있어서. 그렇다고 늘 글을 쓰고 있는 것만은 아니구.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도 보고, 공부도 하고, 맛있는 거 찾아서 야외도 나가고 해요.
(내년까지 원고가 밀려 있다는 말씀에 적잖이 놀라면서 곧 나올 책은 어떤 것인가 여쭈었다. 하반기에 몇 권 나오는데, 진작 책이 됐어야 할 원고들이 출판사가 다르다 보니까 우연히 하반기에 혹은 내년 초에 몰려 있다고 함)
알라딘 : 선생님을 뵙기 전에 미리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받았는데, 그중 가장 많았던 질문이 '동화를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였어요. 구체적인 말씀 부탁드릴게요.
황선미: 95년에 '한우리'라는 데서 독서지도자 공부를 했어요. 그 당시 아이가 유치원 다닐 나이였는데, 뭔가 내 일을 꼭 해 보고 싶었어요. 수원에 살고 있어서 오전 10시 수업을 받기가 쉽지 않았지요. 그러면서도 항상 글을 쓰고 싶었는데 마침 옆 교실에 '동화 아카데미' 1기 과정이 생겼어요. 그때는 '동화'라는 장르를 잘 몰랐어요. 사실 공부하면서 데뷔했고, 습작으로 단편들을 썼어요. <늘 푸른 나의 아버지>(초판 제목은 '내 푸른 자전거')는 첫 장편이에요. 늘 맘에 있던 이야기를 그 작품에다 했어요.
(알라딘: 동화 쓰는 것에 대해 좀더 여쭙자 생각지도 못한 멋진 이야기 하나를 해주셨다.)
황선미: 동화 쓰는 필력이 생긴 건 어린 시절 버릇 때문인 거 같아요. 6학년 때 만화책방에 가끔 갔어요. 10원 내면 3권 볼 수 있었는데 형편상 자주는 못 다녔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재미있는 만화 내용을 까 먹는 게 아까워서 공책에 적어두는 버릇이 생겼어요. 만화 한 권을 적으면 초등학생 공책 3권 정도가 되더라고요. 재미있는 건, 적다보면 원래 이야기대로 써지지 않고 내용이 달라진다는 사실이에요.
그때부터 늘 쓰는 습관이 붙었고, 종이와 펜에 대해 예민해졌어요. 동화 쓰기 전에는 '유아정보'라는 데에 육아일기를 일년 넘게 연재한 적도 있어요. 유치원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우리 아이에 대한 정보를 적어서 드렸는데 어느 날 육아일기를 한 꼭지 쓸 수 있겠느냐 하시더군요. 그때부터 아이를 꼼꼼이 보는 버릇이 생겼을 거예요.
아이와 어른이 같이 공감할 수 있도록
알라딘: 알라딘에서 선생님 작품을 찾아보면 참 많은 독자서평이 올라와 있어요, 그 중에 어린이 독자도 많지만, 어른 독자도 상당한 거 같아요. 그러고 보면 '동화는 어린이용이다'라는 말을 깨버린 분이 황선미 작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울러 황선미의 동화는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도 있는데..
황선미: 그런 질문 많이 받아요. 저는 동화도 문학으로 나름대로의 영역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화의 독자는 대부분 아이들이지만 결국 모두를 대상으로 글을 쓸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문제를 정확히 똑바로 바라보려고 해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다고 쉬운 낱말만 쓰거나 타이르는 듯한 말투로 쓰고 싶지는 않아요.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아이와 어른이 같이 공감할 수 있도록 쓰고 싶어요. 책에 대한 이해는 독서 능력의 차이 아닌가요? '아이들이 읽기에는 어렵다'는 말은 일부 어른들 말씀이고,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이해하더라고요.
알라딘: 선생님 작품을 읽다보면, '서문'에 대해 공을 참 많이 들이신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작품을 잘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선생님의 어린 시절이나 최근의 삶의 모습이 언뜻 비치고 있어 좀더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실제로 서문은 언제, 어떻게 작성하시는지요?
황선미: 나중에 쓰지요. (웃음) 출판사가 결정되고, 원고를 다시 손보는 과정에서 전체를 다 보고 서문을 쓰게 돼요. 이때 어려운 게 바로 원고 쓴 지가 오래되면(실제로 출판하는 기간이 오래 걸림) 원고 쓸 당시의 느낌이 이미 아니라는 점이에요. 그러면 이 작품을 왜 쓰려고 했나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나 곰곰이 생각하게 되지요. 저는 서문을 하나의 소품으로 독립적으로 써요. 대체로 서문은 작품의 모티프인 경우가 많아요.
(서문 이야기를 하시면서, 가지고 찾아뵈었던 <초대받은 아이들>을 보시고는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다. 서문 뒷단락의 '단 한번이라도 외톨이가 되어 본 적이 있는 아이, 얼굴에 생긴 흉터나 곱슬머리 때문에 놀림당하는 아이..'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고 가슴에 남아 있던 것을 쓰신 거라고 했다.)
그때그때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선을 다해서 할 따름
알라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쓰시고 난 뒤, 많은 분들의 격려가 오히려 부담이 되지 않으시겠나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 바로 다음에 나온 작품, <목걸이 열쇠>를 읽으면서 <마당을 나온 암탉>의 감동을 찾았다가 실망했다는 사람도 있던데, 이런 종류의 부담을 느끼신 적이 있으신지요?
황선미: 부담은 느끼지 않아요. 저는 그때그때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선을 다해서 할 따름이에요. 그리고 소재가 가지고 있는 그릇의 크기가 작품의 내용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마당을 나온 암탉> 경우에는 소재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많았고, <목걸이 열쇠> 경우에는 한 가지 문제에 집착을 했으니까 이야기가 단순했을 수 있지요. 또 작품을 쓸 당시 작가의 정신이나 탐구 자세가 작품의 성숙도를 결정하겠지요.
알라딘: 어떤 책들을 좋아하세요?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
황선미: 글쎄요... 몇 권만 뽑아내기가 좀 어렵네요. 책 뿐 아니라 좋아하는 것들을 다같이 얘기할께요. 다큐멘터리, 그 중에서도 생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좋아해요. 영화도 좋아해서... 자주 가서 보는 편이구요. 책 중에서는 국제 도서전에서 우연히 만났던 가브리엘 벵상의 책이 제일 먼저 떠올라요. 아직 우리나라에는 번역되지 않은 책인데... 정말, 정말,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지금도 너무 보고 싶어요. 그 외에 <아버지의 바다>, <아빠사자와 행복한 아이들>, <다리 건너 저편에> , '해리 포터'시리즈가 재미있었어요.
꿈은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
알라딘: 위의 질문을 해놓고도 <마당을 나온 암탉>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꿈'은 어떤 것인지, 작품을 쓰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고 쓰셨는지 참 궁금합니다.
황선미: 이 질문에는 사실 대답하기 싫었어요. 아버지 이야기를 또 해야 되니까요. 아버지가 많이 아픈 상태에서, 돌아가실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쓴 원고거든요. 아버지는 죽음을 인정하면서도 뭔가를 원하셨어요. 음식이라든가, 사소한 것들까지.
꿈과 욕망이 뭐 그렇게 다르겠어요. 무엇을 바라는 거, 그건 나를 살게 해요. 아이들에게는 장래 희망일 수 있고, 어른들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겠지요.
알라딘: 선생님의 작품을 보다보면 사회의 여러 아픈 부분들, 부족한 부분들을 짚고 계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나쁜 어린이표>에서는 교육현실을, <샘마을 몽당깨비>에서는 환경문제를, <여름나무>(두산동아, 1998)에서는 장애우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을 짚고 계시는 걸로 읽었는데요, 이 부분은 선생님의 동화관과 깊은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동화'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황선미: 일부러 주제를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문제가 안고 있는 핵심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에요. 환경문제에도 관심이 많지요. 내 아이들도 내가 어렸을 때 봤던 자연환경을 보면 좋겠다 싶고(그렇지 못해서 안타깝지만), 내 아이들의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어요. 엄마로서 갖는 걱정을 글로 써내는 거지요. 또 사람만이 세상의 주인인가 반성하는 마음도 있고요.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판단할 수 있는 눈높이를 보여주는 것
알라딘 : 신간 <초대받은 아이들>에서 보면, 주인공이자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는 민서는 꼭 초대받고 싶었던 '성모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작품을 읽어가다 보면, 민서를 '샌님'이라고 아이들이 부르는 장면이 나와요. 사실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민서는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로 생각이 깊은 아이인데 말이죠.. 선생님은 요즘 아이들 혹은 아이들 세계를 어떻게 보고 계세요?
황선미: 질문을 이해 못하겠어요. 저는 민서를 통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외로움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따돌리는 애는 나쁘고, 따돌림 당하는 아이는 안됐다는 식이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문제도 따돌림의 원인이 될 수 있고 <초대받은 아이들> 경우 문제의 해결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라야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흔히 '요즘 아이들 걱정이에요.' 이런 답변이 나올 줄 알았다. 한방 맞은 거 같았다. <나쁜 어린이 표> 라든지 <초대받은 아이들>같이 아이들의 마음을 꼭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되던 작가가 저리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다니! 부끄럽고, 황선미 작가의 진지함과 겸손함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알라딘: <초대받은 아이들> 에서 민서가 선물로 준 그림 공책을 성모는 아무렇게나 취급하는데, 특히 성모가 만화를 그리는 것처럼, 민서가 정성스럽게 그린 그림 옆에 말주머니를 만들어넣고 장난치는 부분을 보면 절로 주먹이 쥐어져요. 그건 선생님께서 그 당시의 민서의 마음 상태를 아주 집중해서 그려내셨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작품을 쓰실 때, 등장인물의 마음 묘사를 어떤 방식을 통해 그려내시는지요?
황선미: 캐릭터를 연구해요. 이름 선택에서부터. 가령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초록머리'를 보자면, '초록'에서 연상되는 느낌과 머리가 가진 이미지 들이 있지요. 영민하다는.
족제비를 등장시킨 것도 족제비가 닭을 잘 잡는다는 사실과 우리가 흔히 '족제비 같은...' 말을 하면서 얄미워 경계하는 느낌이 있잖아요. 민서는 수원에 살 때 눈여겨 보았던 어떤 아이를 생각하면서 성격을 잡았어요. 이름과 이미지, 목소리 등이 인상적인 작고 하얀 아이가 실제로 있었어요. 언젠가는 저 애를 모델로 꼭 써야지 했었지요. 심리를 그릴 때 그 인물이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요즘 TV 아침드라마에서 어떤 애를 유심히 보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그 아이 성격을 유추할 수 있게 돼요. 저런 아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하겠구나 하는. 어느 순간 캐릭터가 제 것이 되어 버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