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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고 대담한 장편소설 <N.E.W.>로 독자를 찾은 김사과 작가와 서면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소설을 읽은 후 함께 생각해보기 좋은 답변을 공유합니다. (N.E.W.의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 질문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안녕하세요. 현재 뉴욕에 거주중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평소에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는지, 작가로서의 삶과 개인으로서의 일상생활이 궁금합니다.
일이 없는 날에는 집에서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거나 아니면 밖에 나가서 사 먹습니다. 일이 있는 날에는 근처 카페에 가서 간단한 샌드위치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글을 씁니다. 오후에는 책을 읽거나 다른 자잘한 일을 하고 저녁은 가능한 한 집에서 먹습니다. 보통 책을 쓸 때는 몇 달 동안 꾸준히 쓰고 고치고 하는 편이고요 그렇지 않을 때는 일기조차 쓰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때그때 메모를 해두는 편입니다.
재벌 2세와 치정이 얽힌 이야기입니다. 흔히 '막장 드라마'라고 말할 만한 이야기인데요, 재미있게 잘 읽히기도 했고요. 기존 김사과의 소설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낯선 부분과 익숙한 부분을 동시에 느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발자크와 헨리 제임스 소설을 즐겨 읽어서 그 영향이 큰데요, 예를 들어 최상층 부자와 밑바닥 가난한 자들이 등장하며 등장인물들이 신분 상승에 대한 야망으로 가득하고 치정과 배신이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등, 그것이 요즘 한국 기준으로 봤을 때 영락 없는 막장드라마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흥미롭습니다. 어찌보면 한국의 순수(고급)예술이 현실(세속)의 인간사회를 탐구하는 것을 결벽증적으로 멀리하여 대중예술이 그 역할을 억지로 떠맡은 것이 아닌가 안타깝기도 해요.
전작 <천국에서>보다 계급의 범주가 더 극으로 벌어진 느낌이 듭니다. 5평 원룸에서 200평 펜트하우스까지. 이 사람들이 '메종드레브'라는 공간에서 서로를 알고 있으면서도 구별된다는 점이 재미있었어요.
도시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되면, 다시 말해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도시로만 몰려들게 되면 양극화는 필연적인 결론인 것 같습니다. ‘메종드레브’라는 장소는 그렇게 도시화 하는 세상에 대한 메타포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과 평생 교류할 가망이 적은, '상류층'의 일상에 그들이 참여하는 방법. 소설에서 묘사된 최영주의 유튜브 동영상, 정대철 회장을 둘러싼 소문이 퍼지는데 도움을 주는 휴대폰 메신저, 최영주가 자신의 삶을 전시하는 인스타그램 등의 매체가 인상적이었어요.
저를 포함하여 요즘 사람들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통해서 타인들의 진짜 삶을 엿볼 수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상 완벽한 환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에서도 등장인물들이 진짜로 살아가는 삶은 인터넷을 떠도는 이미지와는 영 딴판인 것이 거듭 지적됩니다. 진짜 삶이 보여지는 이미지와 정반대인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요즘은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서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스스로의 이미지와 라이프 스타일을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과 상관이 없죠. 만약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면 공항이나 버스터미널에 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프랑스어, 영어 등의 문장 인용이 부분부분 등장하는데, 해석이 되어 있지 않은 부분이 눈에 띄었어요. 모든 문장을 다 이해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고요.
네, 글에서도 뜻보다는 느낌이나 분위기가 중요한 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이하나를 돕는 캐릭터인 '성공자'가 재미있었습니다. 중독자라는 점에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과 공통점이 있어보였고요, 도박중독이 다른 소비 중독, 권태 중독보다 덜 심각하게 느껴지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성공자는 도박을 통해서 해소하는 것이 나았을 파괴적인 열정을 이하나가 정지용과 엮이는 것에 도움을 주는 데 사용해버린 것이 아닐까요?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해로운 인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공자가 부추기지만 않았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재미있는 문장이 많습니다. 저는 정지용의 입에서 나온 "나는 미끄러지는 미꾸라지ㅡ 잠시 외로운 미꾸라지" 같은 말장난이 정지용의 캐릭터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장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정지용은 위험한 인물입니다. 그 위험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반대로 귀엽고 친근한 느낌을 주었으면 했어요. 덧붙여 정지용이 영어와 불어, 독어를 할 줄 알고, 랭보나 바이런, 셰익스피어 같은 문학가들을 언급하는데요, 유치한 말장난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언어적 재능이 풍부하다는 느낌을 주고 싶기도 했어요.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하는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욕망은 무엇으로도 충족되지 않습니다 최영주와 이하나 사이를 오가는 정지용의 욕망도, 정지용에게서 카드를 받아 소비생활의 끝을 즐기는 이하나의 욕망도 한 단계를 넘어서면 더 이상 무엇으로도 충족되지 않음이 허무하게 느껴졌어요. “그저 꾸준히, 가능한 한 길게 기분이 좋은 상태가 이어지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 아주 좋은 일도, 아주 나쁜 일도, 혹은 아주 괴상한 일도 벌일 수 있다. 내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것을 위해서라면.”(143쪽) 이 문장이 그래서 더 눈에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욕망은 원래 충족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제가 묘사하고 싶었던 것은 욕망 그 자체보다는 욕망을 둘러싼 모든 것이 거래 혹은 게임이 된 상황이었습니다. 정지용은 이하나와 최영주 사이에서 줄타기를 합니다. 계속해서 좋은 기분을 유지하기 위한 게임이지요. 이하나는 정지용의 첩이 된 대신 무제한 신용카드를 얻습니다. 최영주는 정지용의 신임을 얻기 위해서 아이를 버리고요. 정대철은 자신의 왕국을 보존하기 위해서 목숨을 잃습니다.거래들은 전혀 공정하지가 않고, 게임의 룰은 가혹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불평을 하지 않고, 주어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무정한 신의 관점에서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이지 끔찍한 풍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인간이라 부르기로 할 때 그 인간은 혹은 우리는 우리로부터 영원히 멀어지는 것이다." (264쪽)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이어 나갈 정지용과 최영주는 새로운 인류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오히려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악명 높은 폭군과 악녀의 계보를 잇는 고전적인 인간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대철을 어머니 은미라를 '잡아먹은' 아버지라고 묘사하는 부분 , "하나 씨, 먹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정지용 등, 소설에서 사용된 '먹는다'라는 단어가 굉장히 강렬하게 느껴졌어요. 이 단어들이 놓인 자리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정지용이 사는 세상은 흠 없이 완벽한 세상입니다. 항상 깨끗하고 좋은 냄새가 날 것입니다. 한 사회의 지배계층이 사는 세계의 전형적인 이미지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들의 삶은 가장 더러운 것, 피냄새 진동하는 밑바닥 세계가 없다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먹는다’는 원초적인 단어, 동물적인 행위를 통해서 그 아이러니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습니다. 최근 즐겨본 드라마, 요즘 빠져보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Thirteen reasons why」(「한국명: 루머의 루머의 루머」)라는 미드가 재미있었습니다. 미국의 십대들 이야기인데요, 「스킨스」와 「가십걸」을 섞은 데다가 유령 이야기를 가미한 느낌입니다.
이하나에게 책을 한 권 추천한다면 어떤 책을 권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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