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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조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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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커피>

광화문 미로스페이스 사잇길로 오 분 정도 올라가면 오른편에는 성곡미술관 간판, 왼편에는 'coffeest'라는 작은 팻말이 나타납니다. 바람이 매섭고 가느다란 비도 떨어지던 얼마 전, 대원사의 빛깔있는 책 시리즈 중 한 권인 <커피>를 펴낸 조윤정씨를 만나고 왔습니다.

지나치게 감성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게 딱 보기 좋은 중간 즈음에서 이야기하던 그녀는 자신의 일터에서 몹시도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습니다. 돌아오는 길 내내 '커피가게는 일터가 아니고 제 놀이터예요'라던 말과 함께 뿌듯하게 머금던 미소가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 알라딘 편집팀 김세진, 김재욱) 
 
 
유학 시절, 뜻하지 않게 커피를 만나기까지  

알라딘 : 안녕하세요, 가게가 생각보다 붐비네요. (비가 오는 평일 오후 4시경이었는데도, 가게는 손님으로 가득했습니다.)

조윤정 : 금요일인데다가 비도 와서요. 저희 집에는 단골이 워낙 많으세요. 오늘은 다음에 나올 제 책 때문에 출판사에서도 오셨고요.

알라딘 : 아, 다음 책 작업이 한창이시겠네요. 실은 인터뷰하려고 이번에 나온 책을 다 읽었어요. 저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더 기대했는데 이론 위주더라고요. 커피에 필요한 도구들이나 드립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있어서,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유용할 것 같아요.

조윤정 : 첫 책은 사실 강의 교재용에 중점을 두고 썼어요. 그래서 원론적인 내용이 더 많아요. 제 수업을 들으신 분들이 '로스팅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해서 이론을 깊이 있게 다루려고 했어요. 커피에 얽힌 개인사가 궁금하신 분께서는 다음에 나올 책을 읽어보시면 될 거예요. 그 책은 사실 처음에는 소설 형식으로 시작했어요. 저는 소설을 쓰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조금 쓰다보니 사람들이 전부 '그거 네 얘기지?'라고 말하더라구요. 그 책에는 제가 커피를 시작하게 된 계기라든가, 커피집을 하며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 같은 내용이 들어가요.

알라딘 : 이력을 보니 굉장히 독특하신데요. 대학 기관에 있다가 영국으로 유학을 가셨는데, 커피 쪽으로 방향을 트셨어요. 이것 때문에 질문을 여러 번 받으셨을 것 같아요. 큰 결심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하구요.

조윤정 : 쉽지 않았죠. 제 주위 친구들은 당시 전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저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구요. 스스로 학비를 벌어서 공부하는 것이 제 스타일인데, 영국 물가가 너무 비쌌어요. 똑같은 돈으로 미국으로 간 친구는 집을 한 채 빌렸는데, 저는 방 한 칸을 빌릴 수 있었어요. 입학하려고 마음먹은 학교의 등록금도 너무 비쌌고요. 친구들이나 저나 1년 공부하고 1년 일해서 학비 벌고, 그렇게 지냈어요.

알라딘 : 개미와 베짱이, 동화가 생각나네요.

조윤정 : 정말 그랬어요. 그렇게 어렵게 영어 시험도 준비하고 원서를 냈는데, 제가 들어가려던 다큐멘터리 전공 학과 교수가 마침 안식년이었던 거예요. 급작스럽게 유예기간을 가지게 되었죠. 그것도 하나의 계기라면 계기였겠지요. 그래서 뭘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다들 관광 가이드를 이야기하더라구요. 아는 사람 중에 가이드로 일하는 분들에게 전부 연락을 했죠. 소개를 받기로 했는데 갑자기 IMF가 터진거예요.

알라딘 :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겠네요.

조윤정 : 가이드들은 전부 한국으로 돌아갔지요. 제가 만나기로 약속한 가이드 한 명은 어디선가 양말을 팔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막막한 마음에 스코틀랜드에 사는 아는 선생님 댁을 방문하니 '유학생들이 전부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하더군요. 다시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호텔 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일을 마치면 신발이 안 벗겨질 정도로 힘들었어요. 그 다음에는 웨이트리스로도 얼마간 일했고요.

알라딘 : 오히려 공부할 때보다 영어실력이 많이 늘었겠네요.

조윤정 : 하하, 제가 다니던 학교 학비가 싸서 그런지 친구들이 전부 일하느라 바쁘더라구요. 얘기할 기회도 없었지요. 그렇게 여기저기서 일하다가 우연히 커피회사 구인광고를 보게 됐어요. 코벤트가든에 있는 작은 커피회사인데 역사가 30년 이상 된 곳이었어요. 지하에 로스팅 기계가 있고 1층에서 커피를 팔았어요. 3년 동안 일했죠.

알라딘 : 영국에서 커피 회사를 다니다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었나요?

조윤정 : 외국이 아무리 좋고 오래 살아도, 언젠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언제나 하고 있어요. 그 곳에 있으면 저는 항상 이방인이거든요. 저는 집에 가만히 있기만 하면 몸이 아파요. 늘 똑같은 것을 참지 못하고 사람들을 만나요. 그렇지 않으면 커피투어를 하러 가거나 외국에 나가요. 그렇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집으로 돌아오지요.


"제가 영국에서 커피를 볶다가 왔거든요."  

알라딘 : 한국에 돌아왔을 당시에는 아직 커피문화가 대중화되지도 않은 시기였을텐데, 막막하셨겠어요.

조윤정 : 돌아왔는데 아는 사람도 한 명 없어서 고민을 했어요.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커피 볶는 집'이라고 검색한 다음 리스트를 만들어서 마구잡이로 전화를 했어요. "제가요, 영국에서 커피를 볶다가 왔는데요."라고 하니, 열이면 열 "아, 됐습니다."라고 하더라구요. 심지어 집 앞까지 찾아가기도 했어요.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는데, 정작 아무도 저를 써 주는 사람은 없더라구요.

마침 단국대학교에서 수업을 하기로 했던 선생님 한 분이 개인사정으로 강의를 못 하게 됐어요. 그 때 대타로 서너 시간씩 '영국의 커피 문화'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는데, 다행인지 그 분이 3번 정도 연달아 못 나오셔서 제가 계속 했어요. 학기가 끝나고 강의료를 받으러 찾아가서 "저, 또 써 주실꺼죠?"했더니 선뜻 "그럼요."라고 하시는데, 어쩐지 다시 불러줄 것 같지가 않아요. '영국에서 커피를 볶다가 왔는데요'라는 말은 한 번 써먹으니 끝이었어요. 사람들에게는 늘 보여지는 것이 필요하니까요. 보여지지 않는 허상에는 힘이 실리지 않기 때문에 잘 믿지 않지요.

아, 이제 뭘하지. 잡지사에 연락을 했어요, 글을 쓰겠다고. 그 때 제가 기고한 글이 '스타벅스와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는 제목이었어요. 글을 보냈는데 연락이 없어요. 물어보니 스타벅스도 자기네 고객이라 글을 실을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쓴 글의 요지가 스타벅스같은 대기업이 작은 가게를 죽이고 있다라는 것이었거든요. 그 때 결심했죠. 사람들이 찾아와서 원고를 부탁할 때까지는 글쓰는 것을 접자고요.

취직을 하려고 인터뷰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어요. 작은 가게는 한 명이 커피를 볶아도 충분하고, 큰 기업은 로스팅이라는 작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 곳은 원두는 누가 볶아도 상관없으니 차라리 힘이 센 남자를 쓰자, 라고 생각해요. 고민을 거듭하다가 로스팅 기계를 사고 제조업을 차렸어요. 그러다가 제조업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지요. 제가 아무리 고급 커피를 팔겠다, 라고 주장해도 안 보이는 시장을 가지고 어필하기는 힘들어요. 사람들이 뭘 보고 그걸 믿겠어요. 처음에는 포장에 신경을 써서 인터넷 판매를 주로 하다가, 사람들을 직접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제 가게, 파주 여성센터, 이대 평생교육원에서 강의도 하게 된거구요. 지금 이 광화문 커피스트는 네 번째 장소예요.

알라딘 : 영국에서 유학 생활 중 생각지 않게 커피를 만나 방향을 바꾸었다, 고 하셨는데요. 그 전에도 커피에 관심이 있는 편이었나요?

조윤정 : 커피를 자주 마시기는 했지요. 유학가기 전에는 자바커피, 이런 가게가 많았어요. 글쓰기와 문화 연구 언저리를 기웃거리고, 방송작가협회에도 들락거렸어요. 대학원에서는 여성학을 공부했고, 대학 연구소에서도 1년 동안 일했어요. 그래도 커피를 만나리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 했지요. 제가 언제나 관심을 가지던 것은 '이야기'였거든요.


억만금을 버는 것도 아닌데, 너무 바쁘게 일해요.  

알라딘 : 그러고보니 영국에서 다큐멘터리 공부를 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도 자주 접하세요?
 
조윤정 : 이제 몰라요. (웃음) 영화도 몇 번 못 봐요. 처음 한국에 들어와서 본 영화가 '올드보이', 그거 처음 보고 못 봤어요. 한국에 와보니 다들 정말이지 너무 바빠요. 억만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아침부터 밤까지 쉴 틈 없이 일해요. 영국에서는 일하는 시간도 의무적으로 정해놓고, 여행을 다녀오지 않으면 말이 안 통할 정도예요. 공원에서 산책하며 이야기도 자주 하고요.

알라딘 : 아, 조윤정씨 인터뷰하러 오기 전에 '카모메 식당'이라는 일본영화가 생각났어요. 거기 식당 여주인이 맛있는 커피를 만들려고 '코피루약'이라는 주문을 외잖아요. 책을 읽다보니 그게 사향고양이가 커피를 먹고 배설한 원두라면서요, 아주 비싼.

조윤정 : 손님들이 코피루약같은 비싼 원두를 가끔 가져오세요. 백화점에서 사온 몇십 만원짜리라고 하시면서요. 백화점에서도 장사가 되니 유통을 하는 거겠지요. 하지만 그것도 갈아서 포장을 한 다음 시간이 지난 것이니 신선하지는 않아요.

알라딘 : 그렇게 고가의 원두도 팔릴 정도로 우리나라 커피 애호가들의 평균 경제수준도 올라갔는데요, 그만큼 커피문화를 즐기는 의식이 향상된 것 같은지는 의문이예요. 비싼 원두가 맛이 없다고 하면 무지하다고 타박하는 주위 사람들 때문에 주눅이 들 지경이예요.

조윤정 : 로스팅이 안 좋다, 원두가 신선하지 않다처럼, 매우 구체적으로 지식으로 소통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습관화되는 단계까지 이르렀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한 잔 마시는 것과 집에서 직접 원두를 볶아 갈아마시는 것은 틀리죠. 물론 정말로 커피를 좋아하시는 분도 일부 있으세요. 연극배우이신 고객 한 분은 십 오년이 넘도록 직접 커피를 볶아 마신다고 하시더라구요. 숨어있는 매니아들도 꽤 많은 편이고 차츰 늘고는 있어요.


커피, 만남, 나눔. 모두 좋아하시나요.  

알라딘 : 커피를 직업으로 삼고 싶거나 전문적인 지식을 쌓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조윤정 : 요즘에는 취미와 일이 같아지는 추세지요. 커피를 일로 생각하지 말고 놀이로 생각하면 좋겠어요. 재미가 없으면 커피맛이 없어요. 손님들이 바로 알아차리죠. 일터에서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 수 있을지, 궁리했으면 해요.

저같은 경우에는 사람 만나는 것을 정말 좋아해요. 사람 만나는 것은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쓰는 일이예요. 어떤 날은 앉아서 하루종일 '안녕하세요'만 하느라 목이 쉬기도 해요. 그냥 무덤덤하게 '어서오세요'가 아니구요, '아, 오셨어요!'라고 해요. 단골 손님들은 금방 알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채우는 것이 좋은지 한 번 생각해보면 좋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지 돌아보세요. 돈을 받더라도 커피를 한 잔 내려드리는 것은 정말 달라요. 내가 저 사람에게 이 커피를 주면 얼마나 기뻐할까, 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자기 안에 나누려는 마음이 얼마나 있는지가 중요해요.

커피를 가지고 여러가지 갈래를 치며 다양한 놀잇거리를 만들다보면, 깊이와 넓이가 차츰 커지지요. 그러다보면 당연히 모여드는 사람들이 어떤 분위기를 형성할 겁니다.

알라딘 : 취미와 일이 같으신 지금, 행복하세요?

조윤정 : 가게에 나오는 것 자체가 좋지요. 보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몸은 피곤하지만, 집에 있는 것보다 신메뉴도 개발하고 사람들 만나는 것이 즐거워요. 전 일하는 게 아니고 노는 거예요.

알라딘 : 끝으로, 커피에 얽힌 이야기 중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면 알라딘 독자를 위해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조윤정 : <커피잔 아저씨>라는 동화책을 읽은 적이 있어요. 화가가 그림을 그리다가 바빠서 귀 한 쪽을 못 그려줬어요. 그래서 한쪽 귀만 달고 길에 나서니 사람들이 전부 놀렸대요. 그 사람은 고민에 빠졌어요. 자기는 다른 사람과 너무 다르게 생겼는데, 뭘 할 수 있을까.

문득 누군가 자기를 보고 커피잔을 닮았다고 했어요. 커피잔을 닮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커피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커피가게를 열었어요.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커피잔 아저씨를 놀리지 않았어요. 오히려 사람들과 다르게 생겨서 좋아하게 됐지요. 그리고 커피잔 아저씨의 가게는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서 노는 곳이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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