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에서 갓 깨어난 순진한 오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여우 콘라트를 아빠로 인정해 버린 것입니다. 새들은 알에서 깨어나 처음으로 보게 되는 존재를 부모로 알고 따른다는 각인이론을 배고픈 여우가 알 리 없습니다. 각인이론을 발견한 콘라트 로렌츠는 이 이상한 만남의 주인공들 이름이기도 하지요. 아빠와 아들이 된 여우와 오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실, 여우 콘라트는 특별히 정이 많은 동물은 아니었어요. 오리아빠가 되고 싶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고요. 아주 우연히 생긴 가족과 몸을 부비며 살아가면서, 자기희생의 대가로 얻어진 삶의 기쁨을 맛보게 된 것이지요. 선한 마음을 갖고 있던 콘라트에게 어느 날 찾아 온 우연이 운명처럼 강한 힘을 발휘한 것입니다. 여우 콘라트는 다만 그런 자신의 참모습을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을 뿐입니다. 꾸르륵거리는 소리를 해결하기 바빠, 진정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 인색한 우리들처럼 말이에요.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소년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부모님은 소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습니다.
문을 닫는 순간 소년의 방은 왁자지껄, 요란한 소리로 가득 찬 세상이 됩니다.
비어 있던 벽은 전쟁터가 되기도 하고, 정글 속 야생 동물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마술 이야기냐고요?
천만에요. 신문지와 가위, 접착테이프만 있으면 됩니다. 그리고 소년이 원하기만 하면요.
사마귀가 된 소년이 사는 정글에 아빠가 들어옵니다.
위험한 세상에 사랑하는 아들을 혼자 둘 수는 없으니까요.
신문지로 만든 정글에서 아빠는 개구리가 되었습니다.
개구리 아빠와 사마귀 소년.
머지않아 엄마 꽃나무가 둘의 은신처가 되어 줄 겁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나만을 위한 세상,
우리 마음속에도 있지요.
아이도 어른도 누구나 만들 수 있습니다.
원하기만 하면요.
- 옮긴이의 말
책을 번역했다는 마음보다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은 기분입니다. 이상하게도 라픽 샤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밥을 조금만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습니다. 아마 생쥐 수수의 말처럼, ‘이야기’는 마음껏 듣고 원하는 만큼 깨물어 먹어도 다른 누구인가에게 들려줄 때면 새것과 다름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다른 이들에게 ‘선물’할 차례라고 생각하니 행복한 마음이 듭니다. 선물은 받는 것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니까요.
<하이델베르크의 낙타몰이꾼>은 하이델베르크라는 독일의 오래된 도시를 배경으로 옛 아라비아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 다채롭게 그려집니다. 아델과 낙타가 만나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은 동물과 인간이 친구가 되는 아라비아의 전통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섯 편의 우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동물들은 우리가 아는 것과 전혀 다른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짐승을 잡아먹고 싶지 않아 채식주의자가 된 사자, 이야기를 사랑하는 어린나무, 사랑에 빠진 코끼리와 생쥐 등. 독자들은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들 때문에 여러 번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후에는 저절로 배가 불러 올 것입니다.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이야기 모두 타인과의 공존, 꿈과 모험, 욕심과 행복, 그리고 성장 등 우리가 늘 소원하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멋진 이야기 선물은 아라비아인으로서 독일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이력이 완성시켰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탄탄하고 세밀한 묘사는 독일 이야기의 특징입니다. 반면 틀을 벗어난 상상력과 다채롭고 화려한 표현은 아라비아 이야기, 천일야화의 것이지요.
라픽 샤미는 수다스런 이야기꾼이 틀림없습니다. 이야기 속에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지만 그 메시지를 자기 언어로 읽고 해석해야 하는 독자의 역할에 더 많은 공간을 부여하고 있으니까요. 그의 이야기는 듣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감동이 남아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