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사실 세상을 움직이는 비밀들은 거의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눈을 피해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찾기 위해 먼 옛날의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 혹은 사상가들은 수많은 날들을 숨바꼭질하듯이 찾아 헤매며 씨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비밀의 문을 연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역사의 각 장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렇게 위대한 자취를 남길 수 있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요? 하늘에서 어느날 위대한 영감이 툭하고 떨어졌을까요? 아닙니다. 바로 우리 인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알게 모르게 쌓아온 수많은 지식과 지혜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뉴턴은 기적의 해라고 불리는 1666년 인류의 운명을 바꿀 정도로 위대한 발견을 해냈습니다. 신이 세상을 만들고 꼭꼭 숨겨놓은 비밀스런 세상의 설계도를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서 그는 말했습니다. 자신이 이룩한 모든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 거인은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갈릴레이가 만든 과학적인 토대를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거인의 어깨 위에 있다고 누구나 그와 같은 업적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어떤 사람은 계절을 느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군침을 삼킬 것입니다. 그런데 뉴턴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왜 사과는 땅으로 떨어지는데, 저 하늘에 있는 달은 땅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그가 가진 의문이 과학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발견을 만든 것입니다. 작은 호기심이 그 출발이죠. 인간이 도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부터 대부분의 발견과 발명은 이 호기심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의 집에 사과나무가 없었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호기심도 사라졌을까요? 아마 인류의 과학 문명에 있어 발전이 엄청 늦춰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뉴턴은 다른 사람과는 분명히 달랐지요. 그의 집에 사과나무가 없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사과가 없다면 책이라도 떨어졌을 것이고, 탁자 위의 찻잔이라도 떨어졌을테니, 그러한 가정은 사실 무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호기심에다 또 하나의 중요한 밑바탕이 필요합니다. 위대한 발자국을 남긴 과학자들에게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바로 선조들의 유산을 뛰어 넘는 새로운 생각의 틀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답안을 작성하듯 그렇게 지식만을 추구한다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 이상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열 수는 없습니다. 그 지식을 바탕으로 신세계의 문을 열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식은 이 지혜로 가는 징검다리인 셈이죠.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의 한 명인 닐스 보어가 코펜하겐대학의 물리학과에 다니던 시절,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날 그의 교수가 그에게 ‘기압계를 줄테니 그것으로 고층 건물의 높이를 재는 법을 쓰시오’라는 문제를 줍니다.
보어는 “건물 옥상에 올라가 기압계에 줄을 매달아 아래로 늘어뜨린 뒤 줄의 길이를 재면 된다”고 답을 써 냈습니다. 사실 교수가 생각한 답은 높이에 따라 기압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높이를 계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어는 누구나 생각하는 지식에만 의존하는 답이 싫었습니다.
그의 성적은 물론 형편없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보어는 5가지의 답을 더 준비해 교수에게 제출합니다. 그 첫 번째는 ‘기압계를 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아래로 떨어뜨린 뒤 낙하 시간을 잰다. 그럼 건물의 높이는 (½×중력가속도×낙하시간의 제곱)이다’라는 답을 제시하고, 다음으로 네 개의 답을 더 준비하는데 ‘옥상에서 바닥까지 닿는 긴 줄에 기압계를 매달아 시계추처럼 움직이게 하고 그 주기를 측정하면 줄의 길이를 계산할 수 있다’와 이등변 삼각형의 닮음비의 법칙을 이용한 답 등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재미있는 답은 맨 마지막 답이었습니다. 그는 ‘기압계를 건물 관리인에게 선물로 주고 설계도를 얻는다’였습니다.
만약에 보어가 이전의 과학자들이 이룬 업적을 배우고 다시 전달하는데 만족하는 사람이었다면 오늘날 미시 세계를 규명하는 양자역학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정된 생각의 틀에서 과감히 깨쳐 나와 새로운 세계를 보는 눈,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과학자의 조건입니다.
지금은 우리 인간이 지구의 역사에서 가장 큰 거인이 되었지만, 이것은 모두 우리를 앞서간 수 많은 사람들이 고정된 틀을 깨뜨리려는 노력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그 노력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수렵을 하며 과일을 따먹고, 동굴 속에서 추위와 싸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땅에서 공룡이 자신들의 지위를 내주고 사라질 때까지도, 사실 인간은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작은 위협에도 벌벌 떨어야 했던 연약한 동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원시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원시인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에 무조건 복종하는 노예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이 사는 숲이나 들, 강가, 바닷가 그 어디에서도 여타의 동물들에 비해 자유롭지 못하고, 어느 동물보다도 나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원시인은 그 나약함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지요. 그것은 호기심과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했던 사람의 작은 발견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발견은 그들에게 힘센 팔과 튼튼한 다리를 주었습니다. 바로 ‘불’이지요. 이전까지 그들에게 불은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자신들의 몸이 불에 데이기도 하고, 그들의 움막을 송두리째 태워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초로 불을 그들의 거처로 가져온 이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들이 불을 자신의 거처로 가져 오기까지 많은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다 화상을 입기도 하고 자신들의 몸에 붙은 불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산불을 내기도 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도전을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의 친구나 가족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그렇게 도전과 희생으로 얻은 ‘불’은 이제 인간을 거인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 거인은 자신의 몸보다 몇 배 큰 물체라 할지라도 쉽게 들어 올릴 수 있는 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도 수천 킬로미터라도 계속해서 달릴 수 있는 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껏 어떤 새들조차도 오르지 못했던 곳까지 그를 데려다 줄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있고, 바다 속 어떤 물고기보다도 빠르고 유연하게 물속을 헤엄치게 만드는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또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어 있거나 어둠에 가려있는 물체라도 볼 수 있는 눈이 있으며, 세상 어디에서 속삭이듯 말하더라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거인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들이 더 필요합니다. 단순히 교과서의 지식만을 머리 속에 채워 넣고 우쭐대는 키만 큰 거인이 아닌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진정한 거인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은 이제 각자의 몫입니다. 이 책은 그들이 찾고자 하는 것을 위한 최소한의 징검다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사실 세상을 움직이는 비밀들은 거의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눈을 피해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찾기 위해 먼 옛날의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 혹은 사상가들은 수많은 날들을 숨바꼭질하듯이 찾아 헤매며 씨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비밀의 문을 연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역사의 각 장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렇게 위대한 자취를 남길 수 있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요? 하늘에서 어느날 위대한 영감이 툭하고 떨어졌을까요? 아닙니다. 바로 우리 인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알게 모르게 쌓아온 수많은 지식과 지혜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뉴턴은 기적의 해라고 불리는 1666년 인류의 운명을 바꿀 정도로 위대한 발견을 해냈습니다. 신이 세상을 만들고 꼭꼭 숨겨놓은 비밀스런 세상의 설계도를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서 그는 말했습니다. 자신이 이룩한 모든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 거인은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갈릴레이가 만든 과학적인 토대를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거인의 어깨 위에 있다고 누구나 그와 같은 업적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어떤 사람은 계절을 느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군침을 삼킬 것입니다. 그런데 뉴턴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왜 사과는 땅으로 떨어지는데, 저 하늘에 있는 달은 땅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그가 가진 의문이 과학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발견을 만든 것입니다. 작은 호기심이 그 출발이죠. 인간이 도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부터 대부분의 발견과 발명은 이 호기심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의 집에 사과나무가 없었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호기심도 사라졌을까요? 아마 인류의 과학 문명에 있어 발전이 엄청 늦춰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뉴턴은 다른 사람과는 분명히 달랐지요. 그의 집에 사과나무가 없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사과가 없다면 책이라도 떨어졌을 것이고, 탁자 위의 찻잔이라도 떨어졌을테니, 그러한 가정은 사실 무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호기심에다 또 하나의 중요한 밑바탕이 필요합니다. 위대한 발자국을 남긴 과학자들에게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바로 선조들의 유산을 뛰어 넘는 새로운 생각의 틀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답안을 작성하듯 그렇게 지식만을 추구한다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 이상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열 수는 없습니다. 그 지식을 바탕으로 신세계의 문을 열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식은 이 지혜로 가는 징검다리인 셈이죠.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의 한 명인 닐스 보어가 코펜하겐대학의 물리학과에 다니던 시절,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날 그의 교수가 그에게 ‘기압계를 줄테니 그것으로 고층 건물의 높이를 재는 법을 쓰시오’라는 문제를 줍니다.
보어는 “건물 옥상에 올라가 기압계에 줄을 매달아 아래로 늘어뜨린 뒤 줄의 길이를 재면 된다”고 답을 써 냈습니다. 사실 교수가 생각한 답은 높이에 따라 기압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높이를 계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어는 누구나 생각하는 지식에만 의존하는 답이 싫었습니다.
그의 성적은 물론 형편없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보어는 5가지의 답을 더 준비해 교수에게 제출합니다. 그 첫 번째는 ‘기압계를 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아래로 떨어뜨린 뒤 낙하 시간을 잰다. 그럼 건물의 높이는 (½×중력가속도×낙하시간의 제곱)이다’라는 답을 제시하고, 다음으로 네 개의 답을 더 준비하는데 ‘옥상에서 바닥까지 닿는 긴 줄에 기압계를 매달아 시계추처럼 움직이게 하고 그 주기를 측정하면 줄의 길이를 계산할 수 있다’와 이등변 삼각형의 닮음비의 법칙을 이용한 답 등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재미있는 답은 맨 마지막 답이었습니다. 그는 ‘기압계를 건물 관리인에게 선물로 주고 설계도를 얻는다’였습니다.
만약에 보어가 이전의 과학자들이 이룬 업적을 배우고 다시 전달하는데 만족하는 사람이었다면 오늘날 미시 세계를 규명하는 양자역학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정된 생각의 틀에서 과감히 깨쳐 나와 새로운 세계를 보는 눈,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과학자의 조건입니다.
지금은 우리 인간이 지구의 역사에서 가장 큰 거인이 되었지만, 이것은 모두 우리를 앞서간 수 많은 사람들이 고정된 틀을 깨뜨리려는 노력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그 노력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수렵을 하며 과일을 따먹고, 동굴 속에서 추위와 싸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땅에서 공룡이 자신들의 지위를 내주고 사라질 때까지도, 사실 인간은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작은 위협에도 벌벌 떨어야 했던 연약한 동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원시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원시인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에 무조건 복종하는 노예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이 사는 숲이나 들, 강가, 바닷가 그 어디에서도 여타의 동물들에 비해 자유롭지 못하고, 어느 동물보다도 나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원시인은 그 나약함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지요. 그것은 호기심과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했던 사람의 작은 발견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발견은 그들에게 힘센 팔과 튼튼한 다리를 주었습니다. 바로 ‘불’이지요. 이전까지 그들에게 불은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자신들의 몸이 불에 데이기도 하고, 그들의 움막을 송두리째 태워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초로 불을 그들의 거처로 가져온 이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들이 불을 자신의 거처로 가져 오기까지 많은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다 화상을 입기도 하고 자신들의 몸에 붙은 불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산불을 내기도 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도전을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의 친구나 가족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그렇게 도전과 희생으로 얻은 ‘불’은 이제 인간을 거인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 거인은 자신의 몸보다 몇 배 큰 물체라 할지라도 쉽게 들어 올릴 수 있는 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도 수천 킬로미터라도 계속해서 달릴 수 있는 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껏 어떤 새들조차도 오르지 못했던 곳까지 그를 데려다 줄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있고, 바다 속 어떤 물고기보다도 빠르고 유연하게 물속을 헤엄치게 만드는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또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어 있거나 어둠에 가려있는 물체라도 볼 수 있는 눈이 있으며, 세상 어디에서 속삭이듯 말하더라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거인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들이 더 필요합니다. 단순히 교과서의 지식만을 머리 속에 채워 넣고 우쭐대는 키만 큰 거인이 아닌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진정한 거인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은 이제 각자의 몫입니다. 이 책은 그들이 찾고자 하는 것을 위한 최소한의 징검다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사실 세상을 움직이는 비밀들은 거의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눈을 피해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찾기 위해 먼 옛날의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 혹은 사상가들은 수많은 날들을 숨바꼭질하듯이 찾아 헤매며 씨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비밀의 문을 연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역사의 각 장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렇게 위대한 자취를 남길 수 있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요? 하늘에서 어느날 위대한 영감이 툭하고 떨어졌을까요? 아닙니다. 바로 우리 인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알게 모르게 쌓아온 수많은 지식과 지혜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뉴턴은 기적의 해라고 불리는 1666년 인류의 운명을 바꿀 정도로 위대한 발견을 해냈습니다. 신이 세상을 만들고 꼭꼭 숨겨놓은 비밀스런 세상의 설계도를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서 그는 말했습니다. 자신이 이룩한 모든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 거인은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갈릴레이가 만든 과학적인 토대를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거인의 어깨 위에 있다고 누구나 그와 같은 업적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어떤 사람은 계절을 느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군침을 삼킬 것입니다. 그런데 뉴턴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왜 사과는 땅으로 떨어지는데, 저 하늘에 있는 달은 땅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그가 가진 의문이 과학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발견을 만든 것입니다. 작은 호기심이 그 출발이죠. 인간이 도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부터 대부분의 발견과 발명은 이 호기심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의 집에 사과나무가 없었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호기심도 사라졌을까요? 아마 인류의 과학 문명에 있어 발전이 엄청 늦춰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뉴턴은 다른 사람과는 분명히 달랐지요. 그의 집에 사과나무가 없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사과가 없다면 책이라도 떨어졌을 것이고, 탁자 위의 찻잔이라도 떨어졌을테니, 그러한 가정은 사실 무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호기심에다 또 하나의 중요한 밑바탕이 필요합니다. 위대한 발자국을 남긴 과학자들에게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바로 선조들의 유산을 뛰어 넘는 새로운 생각의 틀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답안을 작성하듯 그렇게 지식만을 추구한다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 이상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열 수는 없습니다. 그 지식을 바탕으로 신세계의 문을 열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식은 이 지혜로 가는 징검다리인 셈이죠.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의 한 명인 닐스 보어가 코펜하겐대학의 물리학과에 다니던 시절,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날 그의 교수가 그에게 ‘기압계를 줄테니 그것으로 고층 건물의 높이를 재는 법을 쓰시오’라는 문제를 줍니다.
보어는 “건물 옥상에 올라가 기압계에 줄을 매달아 아래로 늘어뜨린 뒤 줄의 길이를 재면 된다”고 답을 써 냈습니다. 사실 교수가 생각한 답은 높이에 따라 기압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높이를 계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어는 누구나 생각하는 지식에만 의존하는 답이 싫었습니다.
그의 성적은 물론 형편없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보어는 5가지의 답을 더 준비해 교수에게 제출합니다. 그 첫 번째는 ‘기압계를 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아래로 떨어뜨린 뒤 낙하 시간을 잰다. 그럼 건물의 높이는 (½×중력가속도×낙하시간의 제곱)이다’라는 답을 제시하고, 다음으로 네 개의 답을 더 준비하는데 ‘옥상에서 바닥까지 닿는 긴 줄에 기압계를 매달아 시계추처럼 움직이게 하고 그 주기를 측정하면 줄의 길이를 계산할 수 있다’와 이등변 삼각형의 닮음비의 법칙을 이용한 답 등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재미있는 답은 맨 마지막 답이었습니다. 그는 ‘기압계를 건물 관리인에게 선물로 주고 설계도를 얻는다’였습니다.
만약에 보어가 이전의 과학자들이 이룬 업적을 배우고 다시 전달하는데 만족하는 사람이었다면 오늘날 미시 세계를 규명하는 양자역학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정된 생각의 틀에서 과감히 깨쳐 나와 새로운 세계를 보는 눈,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과학자의 조건입니다.
지금은 우리 인간이 지구의 역사에서 가장 큰 거인이 되었지만, 이것은 모두 우리를 앞서간 수 많은 사람들이 고정된 틀을 깨뜨리려는 노력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그 노력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수렵을 하며 과일을 따먹고, 동굴 속에서 추위와 싸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땅에서 공룡이 자신들의 지위를 내주고 사라질 때까지도, 사실 인간은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작은 위협에도 벌벌 떨어야 했던 연약한 동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원시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원시인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에 무조건 복종하는 노예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이 사는 숲이나 들, 강가, 바닷가 그 어디에서도 여타의 동물들에 비해 자유롭지 못하고, 어느 동물보다도 나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원시인은 그 나약함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지요. 그것은 호기심과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했던 사람의 작은 발견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발견은 그들에게 힘센 팔과 튼튼한 다리를 주었습니다. 바로 ‘불’이지요. 이전까지 그들에게 불은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자신들의 몸이 불에 데이기도 하고, 그들의 움막을 송두리째 태워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초로 불을 그들의 거처로 가져온 이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들이 불을 자신의 거처로 가져 오기까지 많은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다 화상을 입기도 하고 자신들의 몸에 붙은 불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산불을 내기도 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도전을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의 친구나 가족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그렇게 도전과 희생으로 얻은 ‘불’은 이제 인간을 거인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 거인은 자신의 몸보다 몇 배 큰 물체라 할지라도 쉽게 들어 올릴 수 있는 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도 수천 킬로미터라도 계속해서 달릴 수 있는 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껏 어떤 새들조차도 오르지 못했던 곳까지 그를 데려다 줄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있고, 바다 속 어떤 물고기보다도 빠르고 유연하게 물속을 헤엄치게 만드는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또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어 있거나 어둠에 가려있는 물체라도 볼 수 있는 눈이 있으며, 세상 어디에서 속삭이듯 말하더라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거인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들이 더 필요합니다. 단순히 교과서의 지식만을 머리 속에 채워 넣고 우쭐대는 키만 큰 거인이 아닌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진정한 거인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은 이제 각자의 몫입니다. 이 책은 그들이 찾고자 하는 것을 위한 최소한의 징검다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보이는 것 만큼?
세상을 움직이는 비밀들은 우리 눈에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눈을 피해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들을 찾기 위해 먼 옛날의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 혹은 사상가들은 수많은 날들을 숨바꼭질하듯이 찾아 헤매었습니다. 비밀의 문을 연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역사의 각 장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렇게 위대한 자취를 남길 수 있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요? 하늘에서 어느날 위대한 영감이 툭하고 떨어졌을까요? 우리 인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알게 모르게 쌓아온 수많은 지식과 지혜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뉴턴은 기적의 해라고 불리는 1666년 인류의 운명을 바꿀 정도로 위대한 발견을 했습니다. 신이 숨겨놓은 비밀스런 세상의 설계도를 찾은 것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내가 이룩한 모든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았기 때문이다.’라고. 물론 그 거인은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갈릴레이가 만든 과학적인 토대를 가리킵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있다고 누구나 그와 같은 업적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어떤 사람은 계절을 느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군침을 삼킬 것입니다. 그런데 뉴턴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왜 사과는 땅으로 떨어지는데 저 하늘에 있는 달은 땅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그가 가진 의문이 과학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발견을 불렀습니다. 작은 호기심이 그 출발이었죠. 인간이 도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대부분의 발견과 발명은 이 호기심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만약 그의 정원에 사과 나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뉴턴의 호기심도 사라졌을까요? 아마 인류의 발전이 엄청 늦춰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뉴턴은 다른 사람과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사과가 떨어지지 않았다면 책이라도 떨어졌을 것이고, 탁자 위의 찻잔이라도 떨어졌을테니 그러한 가정은 사실 무의미합니다.
작은 호기심에다 또 하나의 중요한 밑바탕이 필요합니다. 위대한 발자국을 남긴 과학자들은 무언가가 달랐습니다. 선조들의 유산을 뛰어 넘는 새로운 생각의 틀을 가졌죠. 우리가 학교에서 답안을 작성하듯 그렇게 지식만을 추구한다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 이상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열 수는 없습니다. 그 지식을 바탕으로 신세계의 문을 열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식은 지혜로 가는 징검다리인 셈이죠.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의 한 명인 닐스 보어가 코펜하겐대학의 물리학과에 다니던 시절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날 그의 교수가 그에게 ‘기압계를 줄테니 그것으로 고층 건물의 높이를 재는 법을 쓰시오’라는 문제를 줍니다.
보어는 “건물 옥상에 올라가 기압계에 줄을 매달아 아래로 늘어뜨린 뒤 줄의 길이를 재면 된다”고 답을 써 냈습니다. 사실 교수가 생각한 답은 높이에 따라 기압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높이를 계산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어는 누구나 생각하는 지식에만 의존하는 답이 싫었습니다.
그의 성적은 물론 형편없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보어는 5가지의 답을 더 준비해 교수에게 제출합니다. 첫번째는 ‘기압계를 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아래로 떨어뜨린 뒤 낙하 시간을 잰다. 그럼 건물의 높이는 (½×중력가속도×낙하시간2)이다’ 라는 답을 제시하고, 다음으로 네 개의 답을 더 준비하는데 ‘옥상에서 바닥까지 닿는 긴 줄에 기압계를 매달아 시계추처럼 움직이게 하고 그 주기를 측정하면 줄의 길이를 계산할 수 있다’와, 이등변 삼각형의 닮음비의 법칙을 이용한 답 등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은 맨 마지막 답이었습니다. 그는 ‘기압계를 건물 관리인에게 선물로 주고 설계도를 얻는다’였습니다.
만약에 보어가 이전의 과학자들이 이룬 업적을 배우고 다시 전달하는데 만족하는 사람이었다면 오늘날 미시 세계를 규명하는 양자역학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정된 생각의 틀을 과감히 깨고 나와 새로운 세계를 보는 눈,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과학자의 조건입니다.
지금은 우리 인간이 지구의 역사에서 가장 큰 거인이 되었습니다. 앞서 간 수 많은 사람들의, 이미 고정된 틀을 깨는 노력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러한 과정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사냥을 하며 과일을 따먹고, 동굴 속에서 추위와 싸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땅에서 공룡이 자신들의 지위를 내주고 사라질 때까지도, 사실 인간은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작은 위협에도 벌벌 떨어야 했던 연약한 동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원시인이라 부릅니니다. 원시인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에 무조건 복종하는 노예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이 사는 숲이나 들, 강가, 바닷가 그 어디에서도 다른 동물들에 비해 자유롭지 못하고, 어느 동물보다도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언제부턴가 원시인은 그 나약함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동물들이 갖지 못한 호기심과 엉뚱하게 여겨지는 남다른 생각을 했던 어떤 한 원시인의 작은 발견은 인간에에 힘센 팔과 튼튼한 다리를 주었습니다. 바로 ‘불’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전까지 그들에게 불은 위협적이었습니다. 자신들의 몸을 데이기도 하고, 그들의 움막을 송두리째 태워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초로 불을 그들의 거처로 가져온 이가 있었습니다. 아마 불을 자신의 거처로 가져 오기까지 많은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다 화상을 입기도 하고, 자신의 몸에 불이 붙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산불을 내기도 했을지도 모릅니다. 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도전을 했겠지요. 친구나 가족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도전과 희생으로 얻은 ‘불’은 인간을 거인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거인이 된 인간은 자신의 몸보다 몇 배 큰 물체도 쉽게 들어 올릴 수 있는 팔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도 수천 킬로미터를 계속해서 달릴 수 있는 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껏 어떤 새들도 날아오르지 못했던 곳까지 데려다 줄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있고, 바다 속 어떤 물고기보다도 빠르고 유연하게 물속을 헤엄치게 만드는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또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어 있거나 어둠에 가려있는 물체라도 볼 수 있는 눈이 있으며, 세상 어디에서든 속삭이듯 말하더라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거인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들이 더 필요합니다. 단순히 교과서의 지식만을 머리 속에 채워 넣고 우쭐대는 키만 큰 거인이 아닌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진정한 거인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은 이제 각자의 몫입니다. 이 책은 우리들이 찾고자 하는 것을 위한 최소한의 징검다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사실 세상을 움직이는 비밀들은 거의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눈을 피해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찾기 위해 먼 옛날의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 혹은 사상가들은 수많은 날들을 숨바꼭질하듯이 찾아 헤매며 씨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비밀의 문을 연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역사의 각 장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렇게 위대한 자취를 남길 수 있게 만든 힘은 무엇일까요? 하늘에서 어느날 위대한 영감이 툭하고 떨어졌을까요? 아닙니다. 바로 우리 인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알게 모르게 쌓아온 수많은 지식과 지혜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뉴턴은 기적의 해라고 불리는 1666년 인류의 운명을 바꿀 정도로 위대한 발견을 해냈습니다. 신이 세상을 만들고 꼭꼭 숨겨놓은 비밀스런 세상의 설계도를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서 그는 말했습니다. 자신이 이룩한 모든 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물론 그 거인은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갈릴레이가 만든 과학적인 토대를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거인의 어깨 위에 있다고 누구나 그와 같은 업적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어떤 사람은 계절을 느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군침을 삼킬 것입니다. 그런데 뉴턴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왜 사과는 땅으로 떨어지는데, 저 하늘에 있는 달은 땅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그가 가진 의문이 과학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발견을 만든 것입니다. 작은 호기심이 그 출발이죠. 인간이 도구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부터 대부분의 발견과 발명은 이 호기심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의 집에 사과나무가 없었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호기심도 사라졌을까요? 아마 인류의 과학 문명에 있어 발전이 엄청 늦춰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뉴턴은 다른 사람과는 분명히 달랐지요. 그의 집에 사과나무가 없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사과가 없다면 책이라도 떨어졌을 것이고, 탁자 위의 찻잔이라도 떨어졌을테니, 그러한 가정은 사실 무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호기심에다 또 하나의 중요한 밑바탕이 필요합니다. 위대한 발자국을 남긴 과학자들에게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바로 선조들의 유산을 뛰어 넘는 새로운 생각의 틀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답안을 작성하듯 그렇게 지식만을 추구한다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그 이상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열 수는 없습니다. 그 지식을 바탕으로 신세계의 문을 열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식은 이 지혜로 가는 징검다리인 셈이죠.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의 한 명인 닐스 보어가 코펜하겐대학의 물리학과에 다니던 시절,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날 그의 교수가 그에게 ‘기압계를 줄테니 그것으로 고층 건물의 높이를 재는 법을 쓰시오’라는 문제를 줍니다.
보어는 “건물 옥상에 올라가 기압계에 줄을 매달아 아래로 늘어뜨린 뒤 줄의 길이를 재면 된다”고 답을 써 냈습니다. 사실 교수가 생각한 답은 높이에 따라 기압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높이를 계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어는 누구나 생각하는 지식에만 의존하는 답이 싫었습니다.
그의 성적은 물론 형편없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보어는 5가지의 답을 더 준비해 교수에게 제출합니다. 그 첫 번째는 ‘기압계를 가지고 옥상에 올라가 아래로 떨어뜨린 뒤 낙하 시간을 잰다. 그럼 건물의 높이는 (½×중력가속도×낙하시간의 제곱)이다’라는 답을 제시하고, 다음으로 네 개의 답을 더 준비하는데 ‘옥상에서 바닥까지 닿는 긴 줄에 기압계를 매달아 시계추처럼 움직이게 하고 그 주기를 측정하면 줄의 길이를 계산할 수 있다’와 이등변 삼각형의 닮음비의 법칙을 이용한 답 등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재미있는 답은 맨 마지막 답이었습니다. 그는 ‘기압계를 건물 관리인에게 선물로 주고 설계도를 얻는다’였습니다.
만약에 보어가 이전의 과학자들이 이룬 업적을 배우고 다시 전달하는데 만족하는 사람이었다면 오늘날 미시 세계를 규명하는 양자역학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정된 생각의 틀에서 과감히 깨쳐 나와 새로운 세계를 보는 눈,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과학자의 조건입니다.
지금은 우리 인간이 지구의 역사에서 가장 큰 거인이 되었지만, 이것은 모두 우리를 앞서간 수 많은 사람들이 고정된 틀을 깨뜨리려는 노력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그 노력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수렵을 하며 과일을 따먹고, 동굴 속에서 추위와 싸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땅에서 공룡이 자신들의 지위를 내주고 사라질 때까지도, 사실 인간은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작은 위협에도 벌벌 떨어야 했던 연약한 동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원시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원시인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에 무조건 복종하는 노예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이 사는 숲이나 들, 강가, 바닷가 그 어디에서도 여타의 동물들에 비해 자유롭지 못하고, 어느 동물보다도 나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원시인은 그 나약함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지요. 그것은 호기심과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했던 사람의 작은 발견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발견은 그들에게 힘센 팔과 튼튼한 다리를 주었습니다. 바로 ‘불’이지요. 이전까지 그들에게 불은 위협적인 존재였습니다. 자신들의 몸이 불에 데이기도 하고, 그들의 움막을 송두리째 태워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최초로 불을 그들의 거처로 가져온 이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들이 불을 자신의 거처로 가져 오기까지 많은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쩌다 화상을 입기도 하고 자신들의 몸에 붙은 불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산불을 내기도 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도전을 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의 친구나 가족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그렇게 도전과 희생으로 얻은 ‘불’은 이제 인간을 거인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 거인은 자신의 몸보다 몇 배 큰 물체라 할지라도 쉽게 들어 올릴 수 있는 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도 수천 킬로미터라도 계속해서 달릴 수 있는 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껏 어떤 새들조차도 오르지 못했던 곳까지 그를 데려다 줄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있고, 바다 속 어떤 물고기보다도 빠르고 유연하게 물속을 헤엄치게 만드는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또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어 있거나 어둠에 가려있는 물체라도 볼 수 있는 눈이 있으며, 세상 어디에서 속삭이듯 말하더라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거인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들이 더 필요합니다. 단순히 교과서의 지식만을 머리 속에 채워 넣고 우쭐대는 키만 큰 거인이 아닌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진정한 거인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은 이제 각자의 몫입니다. 이 책은 그들이 찾고자 하는 것을 위한 최소한의 징검다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