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아내와 처음 만나 5년 동안의 연애를 포함하여 아내와 함께 지낸 지 마흔 다섯 해가 지났다.
아내는 예순 넷.
나는 일흔.
결혼 후 20년간의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난 어느 날, 아내도 나이가 들어가며 잔소리가 늘어가지만 “이제는 먹고 싶은 과일을 마음대로 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던 아내의 표정을 떠올리며 그 질고의 세월을 이겨 낸 아내의 희생을 늘 기억하련다.
“당신은, 식사는 잘하고 있죠?
참 자유인가요?
떨어져 있으니 더 그리워지는 거 있죠?
사랑해요.”
나의 삶이 크게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굴곡지지 않게 머나먼 여행지에서도 날 염려해주던 아내의 사랑을 잊지 않으련다.
코로나 시절도 지나갔으니, 쪽빛 에게해를 항해하는 하얀 크루즈 배 갑판에서 산토리니섬을 보여 주겠다는 약속을 계획하고 있다.
아내와 45년을 함께 살았으니 45일간의 크루즈 여행이면 더 좋겠다.
첫 수필집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23년 가을에 - 에필로그
수년 전 어느 조찬회에서 낭송하다 눈물 흘렸던 시가 늘 가슴에 메아리로 남아 있다.
자운영
-전중호
지리산 가는 길 아침 들녘
안개비에 피어 있는 자운영이여
관대한 사랑의 꽃말인양
땅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았다
아내는 자운영으로 살아 늘 죽었고
나는 자운영으로 살아 늘 새로워진다
그래서 미안하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아내의 분홍무늬 웃옷마저
자운영을 닮았다.
자운영은 땅을 위해 꽃다운 목숨을 바치고, 가난했던 시절, 나의 번듯한 양복을 위해 구멍난 양말을 기워 신던 아내는 지금도 날 위해 자운영처럼 살고 있다.
연분홍 옷 색깔도 자운영을 닮은 사랑스런 아내에게 이 수필집을 바친다.
2023년 가을에 -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