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9백 87장의 사진. 이 사진들을 단지 볼 수 있는 상태까지 되는데 상당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주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사진을 보아 나아가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 세월의 압축이기에 제대로 전달되리라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대로 놔둘 수도 없는 일이다. 거의 5개월에 걸쳐 71,861장의 사진을 봤다. 자신에게 축적되고, 사라지고, 흔적이 남으며 변형되어 버린 덩어리들의 부스러기를 모아 형태를 가진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여느 형식미의 작업과 크게 다른 점이 없을지도 모르겠으나, 사진이라는 재료는 특정 부분에 있어서 이러한 변형을 용납하지 않는다. 당시 셔터를 누르게 만든 심정적 이유가 무엇이었건 오롯이 물리적으로 새겨진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같은 사진을 보고 있더라도 보는 사람의 변화에 따라 사진도 달라진다. 그렇게 명확성과 동시에 부 명확성을 획득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사진들은 세부적인 감정의 감촉이나 온도감의 변화는 있더라도, 소멸 혹은 변형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황야에 멀겋게 서 있는 바오밥 나무처럼 시선에서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단순히 개념을 다루는 작업을 넘어 실제로 살이 썩는 냄새와 비린내에 구토감을 삼키며 눈으로 그리고 손으로 직접 재료를 만져 다듬어야 하는 일이다. 작업에 있어 사진이라는 재료는 잔인하다. 이제 29,126장을 더 봐야 한다. - 작가의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