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세상에 없는 그 병원을 생각하면 수많은 나무가 떠오른다.
손바닥 같은 노란 잎을 매달고 선 나무. 서로의 살냄새를 나누어 쓰는 나무. 햇볕을 마구 때리고 있던 나무. 아름드리나무, 이팝나무, 후박나무, 나무, 나무,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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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에서, 신림동에서, 서현역에서, 그리고 무수히 많은 어딘가의 골목에서.
내가 아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것이 때로 괴로웠고, 그것이 때로 죄스러웠고, 때때로 어린 시절 헤매던 서현역을 곱씹곤 했다. 에스컬레이터에서의 오르락내리락. 내가 알던 가장 화려한 곳.
사람들이 쏟아진다. 사람들이 쏟아졌다. 사람들이 쏟아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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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죽음은 공동이 함께 살아내고 마는 삶의 끊임없는 장소가 되는군요.
누구는 그것을 그라운드 제로라 부르고, 누구는 그것을 4·19민주묘지라 부르고, 누구는 그것을 한숨이라 부르고, 누구는 그것을 어떤 이름으로든 부르고, 말조차 하지 못하는 말이 그렇게 탄생하고……
죽음은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군요.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이 끊임없음 앞에서.
나는 기어코 사랑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2023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