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의 공방을 지켜보면서 ‘남편이 지금 살아있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무슨 얘기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일상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입이 무거웠지만 정치·사회·경제적 이슈에 대해선 누구보다 날카로웠던 남편. 마음만 먹었다면 어딘가 괜찮은 자리 하나쯤 차지할 만큼의 ‘레벨’이 되는 사람이었지만 끝내 손을 내밀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갔던 남편. 그가 지금의 ‘586 논쟁’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들려줄지 궁금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숙제를 끝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 남편, ‘정경현’의 삶을 책으로 옮기는 일이다. 굳이 이런 시기에 남편의 삶을 정리하는 것은 흐려져 가는 그에 대한 기억을 엮어 가족과 공유하는 동시에 ‘586’이라는 통칭 속에 자칫 묻혀 버릴지 모를 ‘조용한 586’의 삶을 다시 조명해보는 일이기도 하다. 정치권 586이 전체 586을 대변하지 않는 것처럼 남편의 삶 역시 ‘조용한 586’의 삶을 전부 대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기득권을 스스로 포기한 586이 오히려 더 많다는 사실만은 제대로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