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당나라 유우석은 누실명(陋室銘)에서 “산은 높아서가 아니라 신선이 있고서야 명산이요, 물은 깊어서가 아니라 용이 있고서야 영험하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산림청이 선정한 우리나라 100대 명산을 오르고도 신선을 만나지 못했으니 어쩐 일인가? 그러나 비산비야(非山非野), 산인가 싶으면 어느새 제 높이를 깎아 언덕으로 도회하거나 주역, 겸괘(謙卦)에서 이르는 ‘땅속으로 제 몸을 숨기는’ 겸손한 산도 있는 법이다. 그럴진대 누가 거기 명산이 있는 줄 알아보고, 그리 오르려 하겠는가. 그뿐인가, 저 가야산 산문 밖 어디쯤 산나물 몇 움큼을 놓고 해동갑으로 나앉은 노친이나, 산정에서 서로 웃으며 따뜻한 차 한 잔, 과일 한 조각 건네는 산행객으로 짐짓 신선이 나투신들 우리가 어찌 알아보랴. 그런즉 산빛으로 눈을 씻고 새롭게 볼진대 온갖 미물과 이름 모를 새소리, 바위와 고사목, 청산녹수, 폭포, 저수지, 바다에 이르기까지 제가끔 천성과 때깔에 맞게 낳고 기르고 거두는 이 풍경 속에 어찌 신선이 깃들지 않았으며 왜 명산이 아니라 하겠는가.
기꺼이 몸을 낮춰 아무런 조건 없이 필자에게 어깨를 내어준 그 산들에 조촐한 글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