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시간은 길었고, 희망은 순간이었다. 85호 크레인을 내려오던 날, 따뜻하게 마주 잡았던 손으로 강서와 차갑게 인사를 해야 했다. 밤마다 종이배를 접으며 희망버스를 기다리던 옥빛 작업복을 입은 억센 손의 사내들이 내 이불 속을 파고든다. 그들의 얼굴엔 조선소가 돌아갈 땐 소금땀이, 멈췄을 땐 눈물이 쉼 없이 맺혔다. 작업복에 떨어진 눈물은 옥빛이었다.
“누군가 내게 이소선이 어떤 분이냐고 묻는다면, 누구보다도 독특한 자신의 향기를 가진 사람, 그러나 향기를 내뿜는 순간 자신은 스멀스멀 사라지고 세상 사람들과 어우러질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어떤 기억을 말하든 이야기의 중심은 자신이 아니었다. 자신을 내세우거나 높일 필요를 의식조차 못 하는 사람이었다. 타고난 천성인지 살면서 체득한 것인지, 아무튼 이소선은 그러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껏 살면서 했던 실천과 선택은 늘 주변 사람들의 절박한 요청에 성실하게 응답하고자 한 것, 그뿐이었다.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역할은 바로 이게 아닐까 생각한다. ”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