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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어린이/유아

이름:김기정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9년, 대한민국 충청북도 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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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누가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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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두껍의 첫 수업

“날고 싶어!” 내가 열살 즈음에 하고 다니던 말입니다. 비가 갠 어느 날 갈잎나무 숲을 가로지르던 노란 꾀꼬리의 날갯짓 때문인지, 아니면 어린 나로선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던 그 높다란 산 그림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 내 마음이 온통 파닥이는 날갯짓 소리로 가득했던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때 학교 선생님은 친절하게도 아직 배우지 않은 중력의 법칙을 애써 설명해 주셨는데, 나는 그게 단지 외워야 할 시험문제 가운데 하나일 거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랬기 때문일까요? 나중에 낭떠러지와 나무와 지붕 위에서 몇 번인가 날아오르려다가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만 건요. 나는 그게 중력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럴수록 날고 싶은 마음만 더 간절해졌거든요. 거뭇한 콧수염이 나면서도, 이런 내 바람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땐 ‘중력 조절 장치’를 만들겠노라고 떠들고 다녔죠. 내가 자석의 미는 힘과 팽이의 원심력에 한동안 마음이 끌린 것도 그래서예요. 하지만 그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공중에 뜨기에는 내 무게가 점점 늘어만 갔고 내 안의 또 다른 욕망들도 점점 무거워졌으니까요. 그러면서 꾀꼬리의 날갯짓은 기억에서 점점 희미해 갔어요. 내가 본 산 너머의 세상도 기대치완 너무나 달라서 적잖이 실망하고 있었죠. 어쩌면 날기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절망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덧 나이가 서른이 넘어섰고 내 마음은 점점 조급해졌어요. 그런 어느 날이었을 거예요. 내 앞에 뭔가 나타난 건요. 그건 뜻밖에도 ‘동화’였습니다. 아이들이나 읽는 것이라고 뒷전에 두었던 바로 그 이야기요. 희한하게도 그 안에 내가 잊고 있던 날갯짓과 중력을 거스를 수 있는 멋진 장치들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일을 제쳐 두고 동화 쓰기에 골몰한 건 그때부터예요. 하지만 ‘이야기’는 발견했다는 것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생각한다는 것과 실제 만들어 낸다는 것은 아주 다르니까 말입니다. 거듭할수록 매우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렇게 10년은 내게 무척이나 짧고도 긴 나날이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날아오르는 법’을 찾아 헤매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난 여전히 땅 위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실망하고 포기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날기’를 꿈꾸는 일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를 아니까요. 여기 실린 작품 10편은 그동안 내가 찾아 헤맨 ‘나는 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언젠가는 꼭 그런 날이 오리라는 꿈. ‘나는 왜 아직도 날고 싶은 걸까?’ 그 대답을 찾아서 말이죠. 이것이 내가 동화를 쓰는 까닭입니다.

야, 그림 속으로 들어가보자!

미술작품에 대해 사람들은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전문 미술 지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건 예술가들이나 하는 것이니까? 라고 말이죠.이런 사소한 두려움들이 지금까지 경외의 대상으로 표현되곤 하는 미술작품들을 오히려 사람들을 멀어지게 한 것은 곰곰이 따져볼 일입니다. 특별한 미술 전문 지식이 없는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아무런 조건없이 순수하게 미술품을 감상하고, 거기서 화가가 의도한 것의 한 조각이라도 발견해낼 줄 안다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미술을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접근하게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 아닐까요? 이 책에서 인용된 한시는 송나라 휘종황제가 과거시험에 출제했던 문제입니다.'깊은 산 속에 절이 있네'어쩌면 이 문구가 내가 이 책을 내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밖에도 여러 예시가 있습니다만 따로 다른 지면을 통해 소개해볼 작정입니다. 어쨌든 전문 지식이 없이도, 어린이들이 미술을 통해 상상력을 키우고 아울러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할 줄 안다면 더욱 좋겠지요. 이것이 바로 개개의 지식이 아닌 지혜를 뽑아낼 줄 아는 방법을 터득하는 길일 것입니다. 아직도 나는 미술이야 말로 사고력을 키우는 가장 중요하고 적절한 교과목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부디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이 단순한 미술 감상이 아닌 자신의 창의력을 키우는 방법을 하나씩이라도 배웠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2000년 12월 21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우리의 초등학교 시절, 음악 시간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습니다. 꿀밤을 피하려면 리코더나 캐스터네츠를 빌리러 다녀야 했고 당번들은 다른 교실에 가서 풍금이라 부르던, 무거운 건반 악기를 들고 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쿵짝쿵짝! 다행히도 선생님께서는 손가락을 마술사처럼 움직여 멋진 음악을 우리 앞에 부려 내셨지요. 얼마나 신기하던지, 나는 수업이 끝난 빈 교실에 몰래 남아 건반을 몇 번인가 눌러 보기까지 했습니다. 겨우 계이름 몇 개를 두드리는 게 고작이었으나, 그 소리들만큼은 아직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음악엔 재주가 없어 건반은 참 어려운 일이었고, 리코더와 하모니카로 몇 소절 부는 게 다였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운이 좋은 것일까요? “너희들은 행복한 줄 알아라!” 입버릇처럼 하는 말입니다. 어느 정도는 ‘우리는 못 그랬지만 우리 아이만큼은 악기 하나쯤은 제대로 다룰 수 있으면 좋겠다.’란 부모의 바람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터입니다. 그만큼 음악은 우리 부모님들에겐 머나먼 은하수를 닮은 로망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이 배경입니다. 8년 전 어느 날, 아이 학교에 오케스트라반이 생긴다는 소문이 돌았고 부랴부랴 아들의 지원서를 넣었습니다. 연주회장에서나 보던 오케스트라가 초등학교에 생기다니요. 그 자체만으로도 아이들보다 우리 부모들이 더 흥분했던 것 같습니다. 역시나 고물고물한 녀석들은 학기 초에 바이올린을 흔들며 폼을 잡았고, 제 몸집보다 큰 첼로를 끌었고, 클라리넷으로 흥흥거렸습니다. 소리는 끽끽, 삑삑이라서 과연 어떻게 될까, 몰래 녀석들의 일과를 살피곤 했습니다. 그런데 학년말이 되었을 때, 녀석들은 놀라운 모습으로 바뀌어 있더군요.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의 서곡을 연주해 내는 겁니다. 굉장한 연주는 아니었지만 큰일을 해낸 듯한 아이들 얼굴을 보면서 우리도 같이 감동을 했습니다. 나는 그 연주회를 보면서, ‘오늘 이 오케스트라반 이야기를 써 주어야지.’ 속으로 약속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약속은 벌써 수년이 흘러 버렸더군요. 그러고 보니 그 시절 오케스트라반 아이들은 어느덧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길거리를 걷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움찔하며 ‘이렇게 컸나?’ 하고 휘둥그레집니다. 대학생이 된 큰아들 녀석과 가끔이지만 이런저런 예술 이야기를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어쩌다 오케스트라반 이야기를 하면 녀석은 뭐가 좋은지 해죽입니다. 음악과 문학과 미술, 그 본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낍니다. 한편으론 우리의 삶 역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도요. 그냥 편하게 음악을 즐기면 되는 걸. 이야기를 듣듯, 코코아를 홀짝이며 빵 조각을 씹듯이, 음악도 그러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삶은 그렇게 쌓여 간다는 걸, 당연한 진리 하나가 예술 속에서 더 선명하게 보이는 까닭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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