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익숙해지면서 내가 버린 건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것. 당연했던 게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 때 시가 피어올랐다. 현실은 늘 상상력을 앞질렀고 어둠과 적막 사이에서 온몸이 시었다. 걷고 또 걸었다. 한라, 태백의 등줄기, 백두, 요동벌, 만주, 열하, 숱한 발걸음을 모아 팔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을 묶는다. 묵묵히 동행해 준 분들께 감사드린다.
“안녕하세요? 저는 열 살이에요. 라디오를 듣는 엄마를 따라 자주 듣다 보니 ‘사연’이라는 낱말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오늘은 저도 ‘사연’을 보내요.”
자주 듣는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다. 내가 ‘사연’이라는 단어의 뜻을 처음 알게 된 게 언제였을까? 운명, 고독, 인연, 욕망 등 지금은 너무 익숙하게 상투적으로 쓰고 있는 낱말들도 처음 만났을 때에는 무척 낯설면서도 매혹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언어에 대한 설렘이 있었기에 글 쓰는 업을 갖게 된 게 아닌가.
시대가 바뀌면 언어 환경도 바뀐다. 열 살 어린이의 ‘사연’처럼 요즘 내가 새로 알게 된 낱말은 무엇인지, 어떤 단어 앞에서 전율했는지 곰곰 되새겨본다. (중략)
‘사연’은 대개 상처와 연결돼 있다. 개인사로 인한 것이든 사회나 국가 차원의 사건으로 인한 것이든 상처들은 쉬 낫지 않고 공감과 연대를 부른다. 사연들이 나를 선택하고 나는 그것들을 받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