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다.
어디서 멋진 벽시계를 하나 얻어온 적이 있다. 그것을 걸어둘 만한 곳을 찾다가 마침 작은방 벽에서 빈 못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왜 거기에 아무것도 걸어두지 않았는지 새삼 의아했을 만큼 딱 맞춤한 자리였다. 그러나 시계를 거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계 뒤에 나 있는 눈사람 모양의 구멍은 아주 작았고 못 대가리는 그보다 더 작았기 때문이었다. 시계를 뒤집어 구멍 위치를 대강 확인한 뒤 도로 뒤집어 이쯤이다 싶은 곳에 갖다 대기를 반복했으나 구멍과 못은 서로를 찾지 못하고 계속 어긋났다. 나는 시계를 벽에 대고 비비고 돌리며 한참 애를 썼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위치(시계 구멍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시계 중심부에 가깝게 나 있었던 것이다)에서 못과 구멍이 짤깍 들어맞았고, 그 순간부터 시계는 마치 이 집의 모든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온 존재마냥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벽에 들러붙었다.
나는 밟고 서 있던 의자에서 내려오며 이것이 소설 쓰기와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고 먼 미래에 내가 생각보다 더 잘되어 책이라는 물건을 짓게 된다면 그 책의 말미에 이 이야기를 쓸 수도 있겠다고 여겨 기억해두었으며 지금 그것을 꺼내어 쓴다.
2021년 가을
도대체 왜 이유리는 인간을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걸까.
이유리의 33년 동안의 삶에서 주로 사랑해온 것이 하필이면 ‘인간’이라는 사실. 이 세상에는 인간보다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 차고 넘치는데도.
그렇다면 이유리는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인가. 무엇을 원해서? 그야 사랑이다. 이유리는 사랑받고 싶어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유리가 택한 바로 그 인간에게, 전심전력으로, 언제 어디서나 변치 않는 지구 최고의 사랑을!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다.
어디서 멋진 벽시계를 하나 얻어온 적이 있다. 그것을 걸어둘 만한 곳을 찾다가 마침 작은방 벽에서 빈 못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왜 거기에 아무것도 걸어두지 않았는지 새삼 의아했을 만큼 딱 맞춤한 자리였다. 그러나 시계를 거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계 뒤에 나 있는 눈사람 모양의 구멍은 아주 작았고 못 대가리는 그보다 더 작았기 때문이었다. 시계를 뒤집어 구멍 위치를 대강 확인한 뒤 도로 뒤집어 이쯤이다 싶은 곳에 갖다 대기를 반복했으나 구멍과 못은 서로를 찾지 못하고 계속 어긋났다. 나는 시계를 벽에 대고 비비고 돌리며 한참 애를 썼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위치(시계 구멍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시계 중심부에 가깝게 나 있었던 것이다)에서 못과 구멍이 짤깍 들어맞았고, 그 순간부터 시계는 마치 이 집의 모든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온 존재마냥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벽에 들러붙었다.
나는 밟고 서 있던 의자에서 내려오며 이것이 소설 쓰기와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고 먼 미래에 내가 생각보다 더 잘되어 책이라는 물건을 짓게 된다면 그 책의 말미에 이 이야기를 쓸 수도 있겠다고 여겨 기억해두었으며 지금 그것을 꺼내어 쓴다.
2021년 가을
이유리
“너의 삶은 사랑으로 가득하지만, 사랑은 곧 동량의 고통이기도 하지. 너는 많은 것을 갖지만 네가 가진 것들은 널 수시로 괴롭힐 거야. 너는 아름답지만 네 추한 마음을 가릴 수 있을 만큼 사랑스럽지는 않고, 너는 굳건하지만 네 머릿속의 폭풍을 멎게 할 수 있을 만큼 강하지는 않을 거야.”
나는 방금 들은 말을 곰곰이 곱씹으며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물론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뭐가 된다는 건데?”
그러자 캔 속의 존재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아아, 너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이 될 거야.”
이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은 날 저녁, 온라인 게임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잠깐 집중이 흐트러져 실수를 한 내게 우리 편 팀원이 ㅈㅇ?라는 채팅을 보냈다. 그게 무슨 뜻인지 게임이 끝난 뒤에야 이해했고 속수무책으로 참담해졌다. 내가 만들어낸 이 세계와 모니터 저편의 세계는 같을까, 다를까. 같다면 어떻게 같고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