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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이름:황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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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내일이면 다시 태어나는 거야>

[큰글자도서] 서브플롯

적어도 내가 목격한 폭력은 크건 작건 죄다 진부했다. 단언컨대 매력적인 배경을 두르고 근사한 이야기가 될 가치 따위는 없다고 믿는다. 반면, 파탄나고 산산조각이 난 파국이야말로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가 될 가치가 충분한 건 폭력에 맞선 쪽이다. 맥락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파편이 되어버린 무력한 일상을 끌어안고 우리는 이야기를 찾는다, 때때로 이야기를 만든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이유를 알고 싶고, 행여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원인을 찾고 싶다. 나를 도우려고 했던 혹은 망치려고 했던 이들의 의도는 무엇이었나 머리를 싸맨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기에 조금이라도 납득하려고 숨은 맥락을 찾아본다. 자신의 해석이 가미된 이야기로 이해할 때 조금이나마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파탄은 이야기를 낳는다. 나도 줄곧 이야기를 찾아왔다. 내게도 이야기가 필요했다. 다소 과욕일지 모르나 폭압과 횡포 속에 살면서도 자신만의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는 누군가의 길에, 자신의 기원과 유래와 파국에서의 탈주를 꿈꾸는 당신의 길 어딘가에 이 소설이 우연히 가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

노바디 인 더 미러

작가명 황모과는 이름뿐 아니라 성씨도 필명이다. 황씨는 어머니의 성이다. 부계 쪽 친척들이 다소 서운해하실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다. 아버지 시대와 단절하겠다는 내 결심을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한다. 단절은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테마다. 작가 정체성을 포함해 인생에 그 어떤 경력도, 성취도, 자산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자부할 수 있을까? 일머리 없는 워커홀릭이라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결과와 무관하게 과정 자체를 긍정할 수 있길 바라고 또 다짐해본다.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던 것들이 모두 해체됐을 때도 내가 나일 수 있다면 그건 내가 그 순간에 함께 했던 타자들 때문일 거라 믿는다.

서브플롯

적어도 내가 목격한 폭력은 크건 작건 죄다 진부했다. 단언컨대 매력적인 배경을 두르고 근사한 이야기가 될 가치 따위는 없다고 믿는다. 반면, 파탄나고 산산조각이 난 파국이야말로 이야기가 된다. 이야기가 될 가치가 충분한 건 폭력에 맞선 쪽이다. 맥락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파편이 되어버린 무력한 일상을 끌어안고 우리는 이야기를 찾는다, 때때로 이야기를 만든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이유를 알고 싶고, 행여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원인을 찾고 싶다. 나를 도우려고 했던 혹은 망치려고 했던 이들의 의도는 무엇이었나 머리를 싸맨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기에 조금이라도 납득하려고 숨은 맥락을 찾아본다. 자신의 해석이 가미된 이야기로 이해할 때 조금이나마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파탄은 이야기를 낳는다. 나도 줄곧 이야기를 찾아왔다. 내게도 이야기가 필요했다. 다소 과욕일지 모르나 폭압과 횡포 속에 살면서도 자신만의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는 누군가의 길에, 자신의 기원과 유래와 파국에서의 탈주를 꿈꾸는 당신의 길 어딘가에 이 소설이 우연히 가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

스위트 솔티

이십대 후반부터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다. 괴롭고 우울한 날엔 늘 자책과 자학으로 가득한 일기를 썼다. 2017년 즈음부터 한국 SF소설을 읽으면서 일기를 소설로 확장해보기 시작했다. 자기반성이나 성찰이란 명목의 체념이 조금씩 내 안에서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은 SF소설을 쓰면서부터였다. 그중에서도 이번 소설집 맨 앞에 실은 「오메라시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소설 집필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라 각별하다. 제목을 보고 알아챈 분들도 있겠지만 어슐러 K . 르 귄의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오마주다. 르 귄의 작품에 대한 소시민적 응답이기도 하다. 르귄은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을 알고 들판의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남은 사람들도 궁금했다.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지하실과 터널을 마주할 수밖에 없으며 이를 반드시 마주해야만 한다. (후략) 2024년 11월

언더 더 독

제대로 변별하기만 한다면 인간이 놓인 맥락이란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할까. 폭력적이고 추레하고 비루하고 역겨운 상황 속에서도, 심지어 도의나 양심이나 염치 이하의 상황에도 논리나 법이나 합의로 재단할 수 없는 의미가 있을 거라는 묘한 믿음이 생기곤 한다. (……) 어쩌면 그가 내 평행우주는 아닐까. 나도 인생의 여러 분기점에서 자멸적 선택을 충분히 하고도 남았으니.

이상한 나라의 스물셋

스물셋 즈음의 나는 계급 ‘문제’가 취향 ‘이슈’보다 훨씬 시급하다는 류의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었다. 대놓고 냉담했던 건 아니지만 누군가의 절규에 선택적으로 미지근했다. 내심 품었던 그때의 속내는 사실 지적인 척 사탕발림했던 혐오였다. 부끄럽지만 늦게나마 그 시절을 사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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