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을 필요가 전혀 없는 사람이 있다. 무인도에서 어떤 통신 수단도 이용하지 않고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은 채 홀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완벽히 고립되어 살아가는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에게 유용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개인들은 홀로 살 때보다 서로 무리지어 살 때 다양한 외부 위험에서 벗어나 더 안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타인들과 관계를 맺고 함께 살고 있다는 이 점 때문에 우리의 삶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즉 우리는 사회에 속해 있는 한, 자신의 프라이버시(privacy)를 일정 부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렇게 보호되지 않은 프라이버시 때문에 우리의 삶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저자는 이 책에서 역설한다.
한국어판의 출간에 즈음해, 이 책의 아쉬운 점이기도 하면서 독자 여러분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사항을 밝히는 것이 순서인 듯하다. 이는 바로 이 책에서 제시하는 구체적인 프라이버시 보호 방법들 중 상당수는 대한민국의 법 체계하에서는 그대로 실행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저자 역시 자신이 제시한 방침들 중 일부는 해당 국가나 지역에 따라 불법이 될 수 있음을 언급한다. 이는 이 책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본문에서 여러 차례 강조되듯 어떤 국가에서라도 반드시 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그의 프라이버시 보호 방침들을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이 책은 결코 독자 여러분의 불법 행위를 부추기는 책이 아니다.
게다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침 중 상당수는 일반적 관점에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불러 일으킬 만큼 엄격한 실행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집에서 신문 배달을 받지 말 것은 물론, 이웃의 응급상황에서조차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집 전화를 사용해선 안 된다는 주장까지도 한다. 즉 비단 법률문제가 아니더라도,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침들을 모두 수용하고 따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 방침들을 모두 수용할 필요도 없다. 저자 역시 그렇게 하길 바라지는 않는다. 이유는 당연하면서도 간단하다. 저자의 논의는 프라이버시 보호가 최우선 목표로 설정되어 있을 때만 타당하기 때문이다. 이 목표하에 저자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누구나 실천하는 편이 좋은 최소 수준의 프라이버시 보호부터 극단적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정체를 완전히 감추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의 프라이버시 보호 방법들을 아울러 설명한다. 어느 정도 수준에서 저자의 지침을 따를지는 독자가 처한 상황이나 주관적 판단에 달려 있다.
이런 일부 한계들로 인해 이 책의 귀중한 가치가 사라지진 않는다.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프라이버시가 위험해질 수도 있고, 이로 인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과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는 단 한 가지 측면에서라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우리에게 어느 날 어떤 일이 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저자가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언급하는 보호되지 않은 프라이버시로 인한 잠재적 위험과 이를 예방하는 방법을 사전에 알고 있다면, 평상시에도 조금 더 경각심을 갖고 행동할 수 있을 것이고 어느 날 갑자기 닥칠지도 모르는 재앙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도 있는 극단적 상황에 대처하는 차원에서라도 이 책에서 제시하는 자신을 숨기는 방법을 알아둘 가치는 충분하다. 마치 만일을 대비해 심폐소생술을 익혀놓듯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은 무인도에 고립되어 살지 않는 모두가 한 번쯤 읽어둘 만한 훌륭하고 유익한 책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제시하는 프라이버시 보호 방법들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할 수 있는 실효성을 갖추고 있을까? 사실 이 방법들의 실효성은 이미 검증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책의 근간을 이루는 방법들은 저자가 1960년대 프랑코 군부독재 체제하의 스페인에서 무사히 비밀 활동을 하기 위해 고안한 것들이다. 저자에 따르면, 그의 많은 동료들이 체포되어 수감되거나 강제 추방되었지만, 그는 이 방법들 덕분에 무사히 살아남았다. 즉 그의 프라이버시 보호 방법은 국민들에 대한 통제가 극에 달했던 독재 정부하에서도 유효한 방법으로 이미 검증된 셈이다. 물론 저자가 스페인에서 비밀활동을 하던 당시에는 인터넷은커녕 오늘날 우리가 이용하는 다양한 통신수단 중 상당수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컴퓨터, 인터넷, 얼굴 인식 등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등장에 따라 추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서도 체계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저자가 1999년부터 해온 국제 프라이버시 자문 사업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프라이버시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이런 새로운 방법들의 실효성 역시 이미 검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저자의 방침들은 다양한 조건하에서 그 효용성을 검증받았으며, 이 점이 이 책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최근 소식을 전하며 글을 마치겠다. 평생 이메일이나 전화 자문은 모두 거부하고 대면 자문만을 고집해온 저자는 최근 건강 문제로 인해 대면 자문을 줄이는 대신 간단한 이메일 자문도 시작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에 관심이 있거나 프라이버시 보호에 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싶은 독자들은 그의 웹사이트인 www.jjluna.com과 그의 블로그인 http://blog.invisible-privacy.com를 방문하길 권한다.
모든 분야에서 공동 프로젝트는 서로 다른 임무를 맡은 다양한 직위를 가진 사람들 간의 협업을 통해 진행된다. 따라서 프로젝트가 좌초하게 되는 원인이 반드시 구성원들의 업무 능력 부족에 있는 것은 아니며, 사소한 감정 문제부터 근본적인 이해관계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다양한 요인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에 있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모든 참여자들의 긴밀한 협업 관계가 전제돼야 하는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도 예외는 아니다. 바로 이 지점이 이 책의 저자들인 로스트와 글래스가 주목한 부분이다. 즉 이들은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도 구성원들 간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고, 여타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 및 인간관계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이고 비윤리적인 일들을 당연히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에 대한 연구와 관심을 바탕으로, 저자들은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에서 발생할 수 있는 특수한 형태의 비윤리적이고 사악한 행위와 사건을 소프트웨어공학의 '어두운 면(dark side)'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이런 어두운 면에 해당하는 문제들을 전복, 거짓말, 해킹, 정보 절도, 스파이 행위, 사보타주, 내부고발 등 일곱 가지 유형으로 나눠 정의하고, 그 발생 방식과 빈도, 원인, 가능한 대처 방안 등을 심도 있게 탐구한다.
저자들 스스로 언급하듯,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에서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요인으로 발생하는 어두운 면에 해당하는 문제들을 기존 소프트웨어공학 분야에서 거의 다룬 적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히 증명된다. 특히 전복과 거짓말에 관해서는 선구적이다. 이처럼 연구 주제의 독창성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충분한 이유를 얻게 되지만, 저자들은 선행 연구를 검토하고 설문조사와 사례분석 등의 경험 연구를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책의 가치를 한층 더 높였다. 이런 충실한 경험 연구 덕분에 이 책에는 매우 흥미로운 그리고 때로는 상식을 넘어서는 연구 결과가 많이 담겨 있다. 이는 향후 다른 연구자들의 연구 아이디어에 영감을 주는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저자들은 다양한 독자층을 염두에 두고 쉽고 흥미로운 일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접근의 용이함과 재미라는 측면도 놓치지 않았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학술적 성격을 지닌 서적이지만,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공학 연구 분야에서 해당 주제에 관심 있는 학자들만을 독자층으로 국한하지 않는다. 우선 이 책은 조직 구조와 문화에 관해 연구하는 사회과학자들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경험 연구를 보여준다. 또한 학술 집단을 초월해, 개발자부터 관리자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소프트웨어 업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에게는 이 책에서 다루는 사악한 현상들을 막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방침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므로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앞으로 소프트웨어 업계에 진입할 학생들에게 교육적인 효과가 큰 책이기도 하다. 물론 개인적으로 또는 조직 차원에서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소프트웨어가 개발 및 유지되는 과정 동안에 어떤 사악한 일들을 겪고 있으며 이것이 소비자인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궁금한 이들에게는 흥미로운 교양서적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 책은 독자의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여기서 미처 언급하지 못한 이 책의 또 다른 가치에 관해서는 독자 여러분이 직접 읽으며 찾아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