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문학적 기억이라는 말은 없다. 나의 상상력이 만든 조어(造語)일 뿐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상상'이란 말 대신 사용하는 이 말에 어떤 생각을 가질지 궁금하다. 아마 생텍쥐페리는 이 말에 동의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린 왕자가 양을 그려 달라고 했을 때, 소년이 '원하는' 양 그리기에 실패한 그가 상자를 그려 주며 '네가 원하는 양은 그 안에 있어'라고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억은 이처럼 재현할 수 없다. 회상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상실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욕망이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아직도 '프로이트를 하느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나는 당신은 프로이트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설령 상대가 프로이트를 좀 안다고 대답한다 해도 나는 또다시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프로이트에 대한 당신의 지식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고. 주로 영미 문(화)학이나 프랑스 문(화)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번역한 이론적인 글, 교육학, 심리학, 의사들의 임상 보고가 그 지식의 제공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프로이트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문학이다.